어릴적엔 비싼 것이 그렇게 사고 싶더니만...
와이셔츠와 운동화
쇼핑했다. 오랜만이다. 지난 1년 동안 벼르고 벼르던 흰색 와이셔츠와 운동화를 샀다.
왜 1년 동안 사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너무 비싸서였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한계 비용을 모두 넘어섰다.
내게 필요한 건. 스타일 나는 것이 아닌 편하게 입고 신을 수 있는 와이셔츠와 신발 정도.
마트랑 아울렛 등 할인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감내할 수 있는 비용 한계선을 넘었다. 특히 요즘 운동화는 기본이 6만 원 이상이었다. 격세지감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애슐리
어제 밤새고 오늘 오전 퇴근했다. 아들과 약속했다. 오늘 점심은 애슐리를 가겠다고. 애슐리는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뷔페 식당이다. 아들은 얼린 망고와 부드러운 젤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스파게티와 *카르보나라 떡볶이도.
*카르보나라 : '카르보나리(19세기 초 이탈리아 독립과 자유를 위해 활동한 비밀결사체) 일원이 만든 파스타 한 종류는 '카르보나라'로 씁니다.
나와 아내는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불러옴을 느낀다. 평소 밥 먹이기가 참 힘든데 여기서만큼은 그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이다.
게다가 아들은 공짜다. 36개월 미만이라... 평일 점심에 다녀오면 2만 원도 나오지 않는다. 가격 대비 만족도는 최고인 셈이다.
35주년
이날따라 애슐리 매장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애슐리가 있는 홈플러스 매장 앞에는 2002아울렛이 있는데 주변으로 차들이 길게 줄 서 있다. 궁금해서 살펴보니 35주년 기념 세일 첫날이었다.
"신발 보러 가볼래?"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말이다. 아내는 자기가 자주 이용하는 가게가 있다며 함께 가보자고 했다.
유레카
밥을 먹고 2002아울렛으로 향했다. 배도 꺼트릴 겸 해서 걸었다. 입구에 와이셔츠 무조건 1만 원이란 문구가 내 발걸음을 움켜쥐었다. 그토록 바라던 가격의 상품! 폴짝 폴짝 뛰고 싶을 정도로 매우 기뻤다.
이미 판매대는 셔츠를 사려는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빽빽하게. 좁은 틈새에 얼굴을 들이밀며 비집고 들어갔다. 흰색 와이셔츠를 고르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아들을 안고 채. 20여 분 동안 신중하게 4개의 흰색 와이셔츠를 골랐다. 100사이즈를 찾기 쉽지가 않았다.
아내도 내가 평상시 입을 수 있는 멋진 컬러 셔츠 2장을 골라왔다. 역시 아내의 옷 고르는 센스는 최고다. 결혼을 잘했다. ㅎㅎㅎ
이날 우린 총 6장의 와이셔츠를 샀다. 6만원에!!! 최소 5년 동안은 와이셔츠를 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뭘 사야 한다는 건 내게 스트레스다.
아우프(AUF)!!!
신발을 사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자주 애용한다는 신발 가게를 찾아 지하로 내려왔다.
아내의 신발이 눈에 보였다. 가격표를 보고 아내한테 미안함이 밀려왔다... 아내는 결혼하고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신발 마저 이렇게 저렴한 것을 사서 신고 다녔구나'란 생각에...
드디어!!!
마음에 쏙 드는 신발을 찾았다. 정가 2만9900원. 20% 할인해서 2만3920원! 그 어떤 신발보다 마음에 들었다.
가게를 나오려는데 컨버스화가 눈에 띄었다. 평소 컨버스화도 하나 신고 싶었는데, 여기선 1만원이었다. 그래서 질렀다. 내 용돈으로. 그렇게 해서 총 9만3920원으로 와이셔츠 6벌과 신발 두 켤레를 득했다.
가계부
집에 도착해 아내가 가계부에 오늘 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요즘 쓰고 있단다.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좀 더 풍족하게 벌지 못함을 미안해 했다.
사실 나 역시도 요즘 씀씀이에 깐깐해지려고 노력중이다. 꼭 지출해야 할 것과 지출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기준을 세우고 있다.
물론 그 기준을 잡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출하는 습관을 조금씩 고치다보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예전 중학교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부모님의 모습도... 지금 내 모습이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있다.
아들에게는 부족함 없이 해주려고 하셨던 부모님.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하셨던 모습...
나도 이제 부모가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