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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파이널 레코딩은 어떤 내용일까

[영화 '미션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딩' 리뷰] 마지막 기록에 관한 고찰

by 광화문덕

비가 오기 직전의 하늘은 늘 뭔가를 예고한다. 마치 삶의 다음 장이 곧 펼쳐질 것 같은 예감.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린 5월의 오후, 초여름의 열기가 묵직하게 내려앉은 그날. 아들과 함께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거리에선 장마를 앞둔 도시 특유의 눅진한 습기가 느껴졌고, 우리는 그 침묵 속에 말없이 걷다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아빠, 미션임파서블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야”


아들은 이번 미션임파서블을 왜 꼭 봐야 하는지 내게 설명했다.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이들이 어느새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말을 이해할 만큼 자랐다는 사실이 순간 낯설게 다가왔다.


아들은 그저 ‘미션임파서블’의 팬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톰 크루즈’라는 인간의 생애에 감탄하는 열렬한 관찰자였다. ‘탑건: 매버릭’을 영화관에서 세 번, 유튜브 유료 결제로 다섯 번 넘게 본 건 물론이고, 그보다 오래된 첫 번째 ‘탑건’까지 수차례 반복 시청했다. 그리고 새 미션임파서블이 개봉할 때마다 아들은 전 시리즈를 정주행 하듯 다시 봤다. 미션임파서블에 대해, 정확히는 톰 크루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다.


아들과 오늘도 노원 '롯데시네마'를 찾았다. 그리고 우린 이번엔 마지막 작품인 만큼 '광음' 관을 예매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톰 크루즈의 인사말이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서 아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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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톰 크루즈가 달린다. 나이가 60대이지만 액션신도 화려하다. 그의 얼굴엔 시간의 선이 분명히 새겨져 있었지만, 그가 질주하는 장면 속에는 여전히 20대의 무모함과 책임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것은, ‘열정’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삶 전체를 태우는 진심이었다.


나는 아들을 옆에 두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톰 형은 참 멋지게 살아왔네”


그는 청춘을 ‘탑건’에 담았고, 그의 전 생애는 ‘미션임파서블’이라는 이름으로 아로새겨졌다. 한 사람의 인생이 <미션임파서블>이란 시리즈가 되어 우리 앞에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현듯 내 마음의 문 하나가 열렸다.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어떤 모습으로 남기게 될까?’


어쩌면 이것이 라스트 레코딩에 대한 나의 첫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자가 되었을 때도, 메타버스를 공부하겠다고 결정했을 때도, 나는 그렇게까지 ‘파이널’을 의식하진 않았다. 늘 현재의 고비를 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의 실마리는… 아주 오래전, 아니 채 몇 년 되지 않은 어느 작은 선택에서부터 시작됐다.


2022년 10월 4일 화요일 점심 무렵 가을볕이 유난히 부드럽던 날. 나는 메타버스 전문대학원 입학 원서를 작성했고, 마지막 결제창에 멈춰 서 있었다.

‘10만 원’.


생각보다 그 숫자가 무거웠다. 좋은 후배에게 술 한잔, 아니 와인 한 병을 선물하는 정도의 금액.


‘그래, 그냥 누군가에게 베푼 셈 치자.’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마우스를 클릭했다. 기대는 없었다. 가능성은 더욱 흐릿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클릭은 내 인생 서사의 조류를 바꾼 첫 문장 같은 것이었다. 그 단 한 번의 결정이 내 공간을, 내 언어를, 내 사람들을 완전히 다시 써 내려갔다.


나는 지금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20대의 나는 지금의 나를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30대, 기자로서 바쁘게 살아가던 시절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불과 3년 전만 해도, 나는 여전히 과거의 궤도 안에서 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삶은, 아주 작은 선택 하나에서 파문처럼 달라진다. 그 물결은 내 생각을 바꾸었고, 그 생각은 내 문장을, 나아가 내 인생의 주어와 동사들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아프게, 그러나 묵직하게 성장하고 있다.


영화관을 나오니, 하늘이 조금씩 개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재미있었어?”

“응. 톰 아저씨는 61세인데도 정말 멋져.”


나는 말없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늙는다는 건 쇠퇴가 아니라, 한 문장을 온전히 써 내려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언젠가 그는 알게 되리라.


내 마음엔 여전히 닫히지 않은 문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내게 묻고 있었다.


'내 삶의 파이널 레코딩, 마지막 글은 어떤 문장으로 남게 될까'


어쩌면 그날은 오늘처럼 불쑥 찾아올 것이다. 비 오는 날의 영화관, 조용한 클릭 한 번, 그리고 옆에 앉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처럼.


나는 아마도 그 순간, 다시 펜을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파이널 라이팅이 되리라는 것을 천천히, 조용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난 바란다. 그리고 원한다.


내가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이유는, 끝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끝이 다가왔을 때, “참 잘 살아냈다”는 한 문장을 내 손으로 조용히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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