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쳐갈 수 없는 이들에게

삶은 늘 버거울 수 있지만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by 광화문덕

오늘 아침, 바람은 차지도 덥지도 않았다. 그저 어딘가를 지나치는 듯한 온도.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출근 시간 속 사람들은 말없이 걷는다.


버스 정류장 앞, 유리창 너머 내 모습이 비쳤다. 어제보다 더 지친 얼굴.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 오늘도 살아내야 한다.'

별 것 아닌 문장이지만, 문득 마음속에서 무겁게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어깨에 잠시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런 순간일수록, 결국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걸.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살아.”

누군가 내 안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 ‘괜찮다’는 말조차도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삶은 때때로 너무 성가시고 고단하다.


오늘 아침의 두려움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어졌고, 오후의 고단함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던 내 등뼈를 타고 스며들 것이다. 퇴근길엔 그냥, ‘오늘도 잘 버텼다’는 문장 하나만을 가슴에 품게 되겠지...

나는 요즘 사람을 믿는 일이 어렵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시간이 지나며 더 절절하게 깨닫는다.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기보다는 상황을 얼버무리려는 이들을 볼 때마다, 속에서 묘한 쓴맛이 올라온다.

'그렇게 살아온 이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면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겠지.'

그리고 그 문장 속에서 나를 돌아보며, 다시금 중얼거린다.

'어쩌면 나 역시도,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알게 모르게, 무심한 말과 시선, 고단한 일상 속에서 흘린 짜증 하나가 가족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가족은 스쳐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무리 괜찮은 척, 다 괜찮다고 말해도 그들은 내 곁에 남아 내 말과 침묵 속에서 진짜 감정을 읽어내는 이들이다.

그래서 가족에게는, 특히 내 아이에게는 더 잘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내가 지쳐 있을 때, 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옆에 와 앉았다. 그 작은 온기에, 나는 몇 번이나 버텼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늘 버거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바뀌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바뀌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자고.

언젠가, 아이가 내 등을 떠올릴 때

“아빠는 늘 무거운 하루를 안고 돌아왔지만, 그래도 나를 웃게 해줬어.”
라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다고.

나는 오늘도, 그렇게 나를 달래며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스쳐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스쳐갈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