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오후, 사장님의 말 한마디
2025년 6월 8일. 오늘 날씨는 초여름의 오후였다.
햇빛은 제법 뜨거웠지만, 나무 사이로 흘러내리는 바람에는 아직 봄의 끝자락이 머물고 있었다. 하늘엔 잔잔한 구름이 무심한 표정으로 떠 있었고, 우리는 자전거를 타러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길에 나섰다.
아들은 신이 났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며 "아빠, 빨리와" 라고 외쳤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언제 저렇게 컸을까’ 싶어 나는 잠시 말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들이 모퉁이를 돌려고 할 때였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자전거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해져 달려갔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아이의 손바닥에는 흙먼지가 묻었고, 무릎에는 살짝 긁힌 자국이 남았다.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자 이상한 점이 보였다. 핸들을 돌리는데, 앞바퀴가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아빠 자전거가 망가졌어 ㅠ_ㅠ”
아들의 슬픔이 내게 전해졌다. 핸들쪽 중앙 나사를 조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당장 그걸 조일 공구가 없었다. 다이소를 가서 살까도 했지만, 일단 너무 멀었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삼천리자전거'라고 적힌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내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났을 때 바퀴를 수리했던 곳이었다.
“아들, 가서 한번 여쭤보자. 수리비가 나오면 아빠가 낼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전거를 끌고 가게로 들어섰다. 마침 가게 앞에선 사장님이 다른 자전거를 손보고 계셨다.
아이는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저… 자전거 핸들이 이상해서요…”
사장님은 천천히 아이 쪽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어디서 샀니?”
“롯데마트요.”
아이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 사장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자전거를 살펴보시며 낮게 말씀하셨다.
“롯데마트에서 산 건, 롯데마트에서 고쳐달라 그래야지… 내가 팔지도 않은 걸 가져와서 고쳐달라 하면 나도 곤란하지…”
나는 괜히 마음이 찔렸다. 무례했던 건 아니었을까, 괜히 누를 끼친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사장님은 아들의 자전거를 살펴보시더니, 느슨해진 나사를 단단히 조이고, 어긋난 방향을 정교하게 바로잡으셨다. 전문가의 손길이란 이럴 때 빛나는 법이다. 뚝딱, 짧은 시간 안에 자전거는 제 모습을 되찾았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아이 자전거… 다음엔 여기서 살게요.”
그 말은 단순한 미안함을 감추기 위한 변명이 아니었다.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려는 빈말도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인에게 자동차가 이동수단이라면, 아이들에게 자전거는 다리이고, 자유이며, 세상으로의 첫 항해다. 유아기부터 고등학생까지, 두 바퀴는 아이들의 날개 같은 존재다.
나는 반성했다. 자동차를 살 때는 서비스센터 위치까지 꼼꼼히 따지면서, 아이 자전거는 단지 '얼마나 저렴한가'만을 보고 샀던 스스로를.
요즘같이 불경기 속에서 수익을 내야 간신히 유지되는 작은 가게에 와서, 우리는 종종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불편함을 건네고, 그 수고로움에 대해 ‘감사합니다’ 한마디조차 잊곤 한다.
사장님의 말은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는 하루하루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이의 피로와 진심이 묻어 있었다. 나는 오늘 사장님의 말씀이 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자전거를 다시 타고 집으로 향하던 길,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가성비만으로 살 수 없는 게 있구나.’
물건을 산다는 건 단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함께 유지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언제든 바람이 빠지고, 타이어가 펑크나고, 나사가 풀리는 일이 생겨도 편히 찾아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안심이고, 위로인지.
예전엔 '가성비' 하나로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을 선택했지만, 이제는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
아이의 안전과 직결되는 이동수단이라면, 오래 타야 할 자전거라면, 그 순간마다 함께 책임져 줄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믿을 수 있는 손에서 구입하는 것이 진짜 ‘합리적인 소비’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다음 자전거는, 이곳에서 조립된 자전거를 타게 하리라'
사장님의 손길과 진심에, 나의 진심도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자전거 대리점에서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수리해주시는 사장님들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요새 경기가 너무 어려운데 힘내세요.
- 광화문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