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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살아있음에 감사해

"무얼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by 광화문덕

아침 공기가 유난히 무거웠다.
묘한 정적이 도시에 내려앉았고,
햇살은 안갯속을 더듬으며 간신히 모습을 드러냈지만
따뜻하다기보단 기운이 빠져 있었다.

출근길 버스 창밖 풍경은
소리 없는 흑백 영상처럼 흐릿하게 흘렀고,
그 위엔 새벽 이슬이 남긴 자국들이
말라붙은 채 무심히 엉겨 있었다.


차 안, 라디오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진동이 울렸다.
익숙한 이름.
익숙한 시간대가 아니었다.


“어, 웬일이야 이 아침에?”

익숙한 목소리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안엔 기운 빠진 숨결이 실려 있었다.


“… 선배, 저 사고 났어요.”

“뭐? 사고? 추돌? 어디 크게 다쳤어?”

“아뇨… 역주행 차량이랑 정면충돌이었어요.”

“……뭐라고? 역주행…?”


말이 막혔다.
가슴 한쪽이 뚝하고 꺼져 내렸다.
그렇게 호기롭고,
무엇이든 잘 해내던 후배였다.
늘 여유로운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친구.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오늘 일반병동으로 내려와서, 이제야 전화할 수 있었어요.”


나는 잠시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봤다.
전깃줄 위엔 참새 한 마리가 외로이 홀로 앉아 있었다.
바람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감정을 지운 듯 무심했다.


“많이… 다쳤겠네.”

“네. 수술했어요. 개복하고 소장도 10cm 정도 잘라냈고요...”

그 말 뒤로 흘러나온 정적은 마치, 생과 사의 가장 가느다란 경계 같았다.
마음이 먹억해져왔다.

나는 숨을 길게 들이쉬고, 겨우 말했다.


“그래도… 목소리 들으니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통화를 끝내고 나니,
하루가 멈춘 것 같았다.
습관처럼 들렀던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했지만,
그 뜨거움조차 내 안의 얼어붙은 감정들을 녹이지 못했다.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지만, 손은 마우스를 움직이길 거부했다.
보고서, 회의, 성과, KPI…
그 모든 단어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정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과를 좇고,
사소한 감정을 삼키고,
비교와 불안을 에너지 삼아 달려온 이 삶이
그저 한순간의 ‘역주행’으로 무너질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늘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들이
얼마나 기적 같았는지를
나는 그제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지각 없이 출근하는 일.
아무 일 없던 하루 끝에 건네는 “수고했어”라는 말.
길 위의 노을을 바라볼 여유.
그 모든 평범함이 실은
삶이 나에게 몰래 안겨준 선물이었음을.


점심 무렵, 동료가 어깨를 툭 쳤다.

“왜, 무슨 일 있어 보여?”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오늘은 하루가 좀 무거워.”


나는 그 무게가 어디서 비롯된 건지 알고 있었다.
한 통의 전화.
한 사람의 고통.
그리고, 나를 멈춰 세운 단 하나의 문장.


“인생이란, 늘 옳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가끔은,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이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의 삶을 뒤엎는 거구나.”


그렇기에,
숨 쉬고 있는 오늘이
‘그냥 그런 날’이어서는 안 된다.
그 하루는 누군가에겐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 날일지도 모른다.


퇴근 무렵,
하늘은 노을을 숨긴 채 무채색이었다.
구름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 사이로 엷은 빛이 겨우 틈을 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하늘을 오래 바라봤다.
그 안에 묻힌 빛이 있다면,
그건 오늘 하루를 견뎌낸 우리 모두의 흔적일 것이다.


공허함이 밀려왔다.


“산다는 건 뭘까…”


그 물음은 어쩌면
우리가 매일 견디고, 웃고, 때로는 울고 나서야
겨우 다시 돌아보게 되는 문장일지 모른다.


살아간다는 건,
단지 숨 쉬는 일이 아니다.
느끼고, 기억하고, 잊고, 또다시 사랑하는 일의 반복.


좋은 날만 있는 인생은 없고,
나쁜 날만 계속되는 삶도 없기에,
삶이란 건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천천히 발견해 나가는 일.


사람마다 살아가는 이유는 다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누군가는 꿈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오늘 하루를 더 살아보자는 의지로 살아간다.


“나는… 무얼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삶이란,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끝없이 답을 시도해 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매일, 내 대답은 달라진다.
어제와 다르고,
내일 또 바뀌겠지.
그건 삶이 정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야기라는 증거니까.


누군가 말했다.

“살아간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을 매일 써 내려가는 일이다.”


오늘, 나는
그 문장의 한 줄을 조용히 써본다.


“아직 살아 있는 내가,
아직 살아 있는 너의 회복을 기다리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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