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게 필요한 건, 퀀텀점프다. 영어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비가 오기 전, 도시는 유난히 조용했다.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리고,
공기는 눅눅한 긴장감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
나는 무심히 스마트폰 유튜브를 켰고,
우연처럼 ‘불꽃야구’ 1화를 보게 됐다.
익숙했던 이름, ‘최강야구’.
그러나 이제는 ‘불꽃야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JTBC가 아닌 유튜브라는
전혀 다른 땅에서 다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플랫폼은 바뀌었지만,
야구는 여전히 야구였다.
트라이아웃.
간절함이 묻어난 순간들
누군가는 프로였다.
누군가는 생계를 병행하며 야구를 품어온 아마추어였다.
그리고 모두 간절했다.
사연도, 출신도, 나이도 달랐지만
영상 속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무게의 시선 아래 서 있었다.
‘기본기’
단순한 캐치볼, 수비 자세 하나, 송구의 정확성.
그 작은 반복 속에서
그들의 간절함과 준비의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맞아... 기본기란, 시간이 쌓아주는 것이다'
나는 문득 마음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타고난 재능도, 뜨거운 열정도
기본이 없다면 그저 겉모양일 뿐.
결국, 나이만 먹게 되고,
그 시간은 '경력'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러워진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해온 말속에, 행동 속에,
이뤘다고 믿어온 성과들 속에
과연 단단한 ‘기반’이 있었던가.
“성과를 내야죠.”
그는 그렇게 말했다.
표정은 단호했지만, 말끝엔 묘한 공허함이 맴돌았다.
나는 안다.
성과를 강박처럼 외치는 그의 말속엔
사람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불안이 숨어 있었다.
남을 깎아내려야만
겨우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
높아 보이기 위해,
타인을 낮춰야만 안도하는 사람.
그의 방식은,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어느새
불꽃야구 1화가 끝났다.
불꽃야구 2화를 플레이했다.
그러다,
영화 <승부> 속 이창호가 떠올랐다.
세상의 박수도, 기대도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흐름으로 바둑판을 마주하던 그 눈빛.
그건 외로움이 아닌 고요한 확신이었다.
나도 이제 그렇게 해보려 한다.
남이 정한 기준이 아닌,
나만의 리듬으로.
주눅 들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비록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그 실수마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기본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결심했다.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아주 작고, 아주 단단한 한 걸음.
영어 공부부터.
그동안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늘 익숙한 방식만을 고집하며 살아왔다.
변화가 두려워서였을까,
실패가 두려워서였을까.
무엇이든 시작은 늘 어색했고, 그래서 쉽게 포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퀀텀점프다.
도약은 늘 낯선 땅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낯선 땅은,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영어는 나에게 오랫동안 장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세상을 더 넓게 마주하는 문이라는 걸 안다.
나는 그 문을 넘기로 했다.
두려움을 끌어안고,
조금은 어설픈 발음으로,
조금은 느린 속도로라도.
나는 시작한다.
어제의 나를 가로막던 벽을 넘고,
내일의 나를 향해 나아간다.
영어부터. 그리고, 나답게.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래야 변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선배님의 조언에 따라
'TED'앱을 깔았고
스픽(Speak)도 1년 연간 결제(12만 9,000원)했다.
불꽃은
화려함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불꽃은 언제나 가장 조용하고,
가장 단단한 바닥에서부터 타오른다.
기초라는 이름의 땀방울,
성실이라는 이름의 침묵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피어난다.
“인생은 결국 사람이야.
인성이 부족하면 결국 혼자가 돼.”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 속에서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진짜 경력은
몇 줄의 이력서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답게 살아왔는가에 달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와 함께했고, 어떻게 기억되었는가.
그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총합 아닐까.
나는 이제,
내 방식대로 살아가려 한다.
말보다 행동으로,
경쟁보다 기본으로,
무너뜨림보다 쌓음으로.
그리고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 이 걸음이,
언젠가 누군가의 불씨가 되기를.
나는 오늘도,
기본을 다지며
나만의 불꽃을 키워가고자 한다.
2025년 5월 17일 광화문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