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했고 나만 알았던 그 때...
자기야 강아지는...
"죽을때가 되면 주인을 떠난대..."
설을 보내러 본가로 가는 길에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난 움찔했다. 내 머리에 스치는 아이가 하나 있어서다. 벌써 10년쯤 된 일이다...
첫 만남
어릴적 강아지를 키웠다. 누나가 취업을 하면서 집은 경제적으로 빠르게 안정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우리집에도 애완견이 입양됐다. 누나와 난 강아지를 좋아했다.
짱구
태어난지 2달 정도된 조그만 강아지 시추. 암놈이었고 새초롬했다. 이름은 짱구로 지었다. 엄마가 붙어줬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짱구가 됐다. 우리 가족은 짱구 덕분에 더 많이 웃게됐다.
짱구는 영리했다. 애교도 많았다. 똥오줌도 잘 가렸다. 예전 마당이 있는 집에 살 때는 마당에서 볼 일을 봤고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와서는 현관문을 열어주면 옥상에 올라가서 볼 일을 보고 왔다. 매우 신기할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짱구를 사랑으로 잘 보살펴주지 못했다.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이었던 아이였다. 짱구를 생각할 때마다 미안함을 느낀다.
짱구는 엄마와 절친이었다. 엄마와 함께 산책하고 엄마와 장을 보러 다니곤 했다. 물론 입양은 누나와 나의 의지로 했지만 뒤치닥거리는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께 죄송하다.
문밖에만 나가면
짱구는 늘 달렸다. 전력질주했다. 문을 나서면 짱구는 늘 자유를 갈구했다. 아니 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만 판단했다. 착각이었다...
목줄을 놓쳐서 몇번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온동네를 찾아다닌 기억도 있다. 어떤 때에는 짱구가 문 앞에 쭈그리고 있기도 했다. 다행히 매번 찾았다. 한 번을 빼곤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수험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왔다. 짱구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단다.
당시 현관문을 열어두곤 했다. 짱구는 볼 일을 보고 싶으면 옥상으로 올라가곤 했다. 옥상에서 비둘기나 참새와 놀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그날도 그런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집 주변을 온종일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밤이지만 혹시나 집앞에서 떨고 있을까해서 나가봤다. 찾지못했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며칠을 집 주위를 찾아다녔다. 혹시 짱구를 만날 수 있을까란 기대에서...
철없는 생각
당시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부모와 대립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다보니 짱구에게 감정이입했다.
짱구가 사라졌을 때의 나이가 10살정도... 우리와 10년을 동고동락했다.
그동안 짱구가 늘 집안에 갇혀있었다고 생각했다. 자유를 우리에게 빼앗겼다고 판단했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따라 산책하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사료만 먹어 그 동안 불행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섣불리 결론을 지었다. 짱구가 자유를 찾아 집을 떠난 것이라고.... 지난 10년 동안 너무 갇혀살았으니 남은 여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나간 것이라고... 내 멋대로 자기합리화했다...
난...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짱구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지금 생각하면 너무 쉽게 포기했다...
죄책감
아내의 말을 듣고난 이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것도 짱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10년을 함께 했던 친구를 잃었음에도 더 깊이 슬퍼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짱구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옴을 느끼고 집을 쓸쓸히 떠난 것일 수도 있는데... 주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일 수 있었는데... 난 그런 짱구를 너무 쉽게 잊었다...
10년 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인 짱구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내가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가족을 돌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짱구는 우리 집의 보배였다. 짱구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부터 집안은 많이 좋아졌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을 뿐 아니라 가정에 웃음도 많아졌다.
잊지 않을게...
지금 우리집에는 아들과 같이 커가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함께해 온 자식과도 같은 놈이다. 어느덧 아들은 우리나라 나이로 4살이 됐고 요크셔 '우니'도 만으로 4살이 됐다.
지난 날의 과오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은 지금 함께하고 있는 우니의 임종을 함께하는 것이리라...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많이 놀아주는 것이 내 지난 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할수있는 길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다.
전해질 수만 있다면...
짱구야 너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 무엇보다 10년이 지나서야 이런 반성을 하게 되서 면목이 없다...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게 되면 꼭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게... 내게 서운했던 마음이 있다면 풀어주렴... 네가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나서야...
37살이 되어서야... 이제야... 이런 깨달음을 얻는 내가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더 늦게 깨닫지 않았음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아빠가 되어간다는 것이 이런 거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