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아픈데 첫째는 나몰라라한다...난 출근중이다
딸! 엄마야
출근길, 옆에 30대 후반 여성이 앉았다. 앉자마자 다급하게 어디론가 전화했다.
듣고 싶어 엿들은 것은 아니었고 옆자리였기에 들리는 것을 안 들을 수 없었다.
"큰 딸! 냉장고에 동생 약병 좀 어린이집에 가져다줄 수 있어?"
그녀는 큰 딸에게 부탁했다. 초반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상냥했다.
딸은 거절했다. 부탁은 이어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동생이 아파서 그런데 네가 학교가는 길에 어린이집에 좀 가져다 줄 수 있어? 엄마가 이렇게 부탁할게"
큰 딸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듯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듯 들렸다.
"동생이 아픈데 약이 없으면 큰 일이잖아. 싫어? 어린이집은 학교가는 길에 바로 있잖아. 멀지도 않잖아. 지금 나가면 학교에 늦지도 않고"
큰 딸은 냉장고에 약병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냉장고에 좀 봤어? 지금 뭐하는데? 다 씻었다며. 5분도 안걸리잖아. 동생이 아파. 언니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잖아"
그녀는 20여 분을 딸과 실랑이를 벌였다. 긴 시간이라면 긴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큰 딸은 이미 약을 가져다 주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말이다.
"알았어 그럼 약병을 가지고만 나와. 어린이집 선생님께 부탁해서 초등학교 뒷문에 가서 좀 받아달라고 말씀드려볼게. 그건 괜찮지? 됐어?"
결국 타협점을 찾았다. 마라톤 협상 끝에 나온 것인데 제3자의 도움을 얻기로 한 것이다. '어린이집 선생님 참 많이 피곤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저 ㅇㅇ엄마인데요. 죄송하지만 큰 애가 ㅇㅇ약병을 들고 학교 뒷문에서 8시 18분쯤에 있을텐데 그것 좀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셨다. 그녀는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녀는 아이가 둘이었고 직장인이었다. 둘째가 고열로 아픈 듯했다. 출근은 해야겠기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나왔는데 안절부절 했다. 해열제가 떨어져 작은 아이가 아파할까 걱정해서였다.
난 그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고집을 부리는 큰 아이에게 화를 내며 하라고 강요할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다소 이기적으로 보였던 큰 딸과 끝까지 대화로 임했다. 설득을 통한 타협을 시도했다. 최선을 다해 대화를 이어갔다.
나 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