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다툰 다음날 퇴근길에 산 작은 꽃다발
어제 아내와 다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다투고 난 뒤면 늘 마음이 좋지 않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받지 않는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둘 중 하나다. 기분이 아직 상해있거나 정말 바빠서다.
요즘 많이 피곤해 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아내에게 꽃선물을 해준 게 참 오래됐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꽃 가격이 꽤 나갔다. 예전에는 3만원이면 그럴듯한 꽃다발을 샀는데 지금은 최소 5만원은 줘야 했다. 좀 마음에 든다 싶으면 10만원에 육박했다.
'플로리스트???'
플로리스트란 직업이 생긴듯 했다. 저마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했다. 유학파......
'정말 우리나라에 유학파가 없는 곳이 없구나'란 생각에 씁쓸했다.
열등감?
쌩뚱맞게 내가 언론 시장에 들어온 이유가 떠올랐다. 24살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진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분야는 국내에서는 사실상 도전조차 할 수 없는 길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만 해도 리눅스 운영체제 붐은 일었지만... 유학을 가지 않고서는 할 수 없었다. 국내 기초학문은 사실상 무너져있는 상태였다.
난 돈이 없었다. 부모님께 유학을 보내달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지금까지 뒷바라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결국 휴학했고 난 다른 길을 찾아야했다. 돈이 들지 않고 준비할 수 있는 길을...
촬영하러 가야죠
촬영감독이 부르는 소리에 공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잠시 꽃고르기를 멈추고 촬영에 임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야하나?'
촬영 내내 고민했다. 결정했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내 지갑 사정으로는 꽃다발에 5만원을 투자할 여유는 없었다.
퇴근 길
오늘은 6시 땡하자마자 나왔다. 꽃가게 몇군데를 들렀다 가기 위해서다. 정 안되면 장미 한송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 앞 지하에 꽃가게에 먼저 들렀다.
"노란 장미 한송이에 1만2천원입니다."
"꽃다발은 얼마에요?"
"7만원이요"
"네... 안녕하 계세요"
역시......
두리번 두리번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 두리번 거리며 걸었다. 저쪽에 '점포정리 파격 할인'이란 종이가 붙은 꽃가게가 보였다. 꽃종류는 별로 없었지만 쌀 것 같아 한걸음에 달려갔다.
꽃가게 앞에 꽃다발 몇 개가 나와있다. 그중에 가장 크고 그럴듯한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얼마에요?"
"3만5천원이요."
가격은 딱 내 스타일이었다. 구성은 마음에 들었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노란꽃이 아니었다. 보라색이었다.
"저... 혹시 노란꽃 없나요..?"
"이거 있잖아요. 2만5천원"
주인이 가리킨 꽃다발은 내 얼굴보다 작은 크기였다. 꽃다발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민망한... 구성도 졸업식때 팔려고 만들었다가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상당히 단순한 느낌...
"이건 너무 작은데.... 노란꽃으로 저렇게 좀 만들어주시면 안돼요?"
"노란꽃이 없어서......."
5분여를 고민한 끝에 결정했다. 노란꽃으로 구성된 작은 꽃다발을 사기로.
돈은 없으면서 그럴듯한 것을 찾는 내가 욕심쟁이라고 생각했다. 없으면 없는대로 그 수준에 맞춰서 사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내는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카드 되지요?"
"해드려야지요. 2만8천원"
'잉???????????? 뭐지??? 현금가가 2만5천원이었던건가...'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줄 꽃을 사면서 실랑이를 벌이거 싶지 않았다.
아내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사는 꽃인 만큼, 꽃의 가치를 내 스스로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3천원을 더 준만큼 부디 아내가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더 비싼 꽃을 사주지 못함에 미안했다. 물론 찝찝하긴 했다...
띵동
여느 날처럼 아들과 우니가 나를 반긴다.
"아들! 엄마한테 꽃다발 좀 전해줘"
아내는 아들방에 있었다. 오랜만에 받은 꽃선물에 놀란 눈치였다. 노란꽃의 화사함이 꽁꽁 얼어붙은 아내의 마음에 봄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듯했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미안해..."
마침내 아내가 웃었다. 아내와 포옹을 하니 아들도 같이 안아달라고 달려들었다. 셋이서 함께 포옹을 한 뒤 아내는 요리를 했다. 내가 어제 먹고싶다고 했단 크림파스타를 말이다.
작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노란꽃이 담긴 꽃다발...
비록 비싸고 폼나는 꽃다발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아내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것을 아내도 느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