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Feb 18. 2016

#38. 메이저 매체서 국장이 오셨다

'마이너 매체 기자'란 열등감을 가진 내게 자존감을 높여준 귀인

띠링띠링

사내 기자들 보고용으로 쓰는 메신저가 연신 울려댄다. 사내가 술렁이고 있다. 내용인즉,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매체. A일보에서 새로운 국장 영입이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글도 잘 쓰고 인품도 훌륭한 분이라는 세평이 함께 돌았다.


'왜 그런 분이 여기에 오는 거지...?'


그런데 하나같이 반응은 의아하다는 식이다. 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메이저 언론사에서 오신다니 우리에게 좋은 일 아닌가. 그분의 선택에 대해서 왜 그리 말들이 많은지...

자존감 up

들어보니 수긍이 가는 면이 있었다. 매체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온라인매체로 옮긴다는 게 명분이었다.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당히 깨어있는 분이라는 존경심까지 들었다. 


나의 자존감도 함께 수직으로 상승했다.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좋게 봤다는 게 내겐 하나의 훈장을 단 느낌이었다.


'그래 열심히 하면 나도 기자로 인정받을 날이 오겠구나'란 자신감이 생겼다. 


하루빨리 신임국장이 오길 기대했다.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첫 대면

새로운 국장은 푸근한 인상을 지녔다. 체격이 푸근하다는 게 아니라 인상이 그랬다. 웃는 모습에서 참 인자하시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도 성품을 느끼기에 충분히 부드러웠다.


대화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광고국장이 별도로 없어 국장이 광고까지 직접 챙겨야 해 회사에서 후배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출입처에서는 화제였다. A일보에서 온라인매체로 옮겼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출입처 임원들은 내게 말했다.


"신임 국장님이 정말 글 잘 쓰고 후배들에게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는데 그런 분을 어떻게 모셔갔는지 대단하다. 요즘 온라인매체에서 가장 잘나가는 매체 같다"라고...


신임국장 덕택에 우리 매체는 찌라시에 돌 정도로 업계의 화제가 됐다. 사내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사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상승기류를 제대로 탄 듯했다.

한 통의 전화

신임 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 한번 하자고 했다. 설렜다. 뛸 듯이 기뻤다. 호감은 있었지만, 직급의 차이가 워낙 커 선뜻 다가서지 못했는데 국장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줬다. 영광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전화를 받으며 90도 인사를 했다. 그만큼 신임국장이란 존재는 내게 위대했다. 마이너 매체 기자란 꼬리표와 그에 따른 열등감이 내게 있었기에 신임국장의 호의는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D-Day

명동에서 국장을 기다렸다. 너무도 설레는 마음에 일찌감치 마감을 끝내고 나왔다. 빨리 국장을 만나 메이저 언론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국장님 안녕하십니까!!!"


국장을 만났고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관우선배와의 인연

음식점에 도착했다. 국장이 직원의 안내를 받고 들어갔다. 거기엔 중년의 멀끔한 신사 한 분이 앉아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같은 풍채라고 할까. 무언가 현장을 압도하는 그런 아우라가 느껴졌다. 딱 벌어진 어깨에 눈매는 인자한 듯 보였으나 매우 날카로웠다.


자리에 앉았다. 관우선배는 '쟤는 뭐냐'는 눈치를 국장에게 보냈다.


"이 친구는 내가 데리고 있는 기자인데 열정이 남달라. 꽤 잘해. 비록 온라인매체로 입사했지만, 잘만 가르치면 꽤 좋은 기자가 될 것 같아서 데리고 나왔어. 출입처에서 보면 잘 챙겨줘"


그제야 관우선배의 눈빛은 선하게 바뀌었다. 경계를 풀며 말했다.


"걔는 차가 막혀서 곧 도착한대요"


"어 그래. 우리 뭐라도 먼저 시키자"

오랜 벗이란 게 이런 느낌일까?

관우선배와 신임국장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존중하며 오랜 벗이 만난듯한 분위기였다.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난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내가 여기 앉아있음에 감사해 할 뿐이었다.


신임국장이 날 좋게 봐줬다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많은 선배 기자들이 있었는데 내가 선택됐다는 것에도 기뻤다.


그날은 가볍게 술 한잔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만난 날을 기약하며...


이런게 인생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어쩌면 인생에 대한 울림이 내 마음을 잔잔히 흔들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신임국장과 관우선배의 모습에서 인생의 벗이란 강한 인상을 받았다. 사실 회사에 입사하고 1년이 넘는 동안 동료애는 느껴봤지만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온라인 매체 특성상 젊은 기자가 많은 것도 그렇고, 연차가 높은 선배의 경우에는 잦은 이직을 한경우였다.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하며 우정을 쌓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 자리에서가 처음이었다. 신임국장과 관우선배는 한 직장에서 10년 아니 15년 이상을 함께해 왔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들 사이에도 믿음과 우정이 쌓였을 것이다. 함께 현장을 뛰어다니며 동고동락을 함께 해왔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회사를 떠난 선배를 후배가 따로 만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 두 분의 모습에서 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함께 할 수 있는 오랜 벗을 많이 만들자,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생겼다. 


그리고 확신하게 됐다. '잘 배우면... 열심히 노력하면... 나도 좋은 기자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이전 29화 #34. 기자란 이름이 참 가벼웠던 그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