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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an 13. 2016

#34. 기자란 이름이 참 가벼웠던 그때...

수습기자의 첫 교육 임무를 맡고 떠오른 기억...

수습기자

주말 근무다. 24시간 근무... 오늘부터 수습기자가 필드에 투입된다. 그들은 4개월 동안 기자로서 거듭나기 위한 혹독한 첫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잠과 싸워야 한다. 자신의 체력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경찰들과 맞닥뜨리며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때론 취재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부디 잘 버티길...

우리 회사의 경우 수습 기간은 4개월이다. 이 기간에 수습은 경찰서를 밤낮으로 돈다.  물론 매일매일 기사 교육도 병행한다.


첫 수습보고를 내가 맡게 됐다. 첫날은 늘 부담스럽다. 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첫 경찰서, 그리고 당직 경찰과의 첫 대면...


난 이들에게 기자 삶의 첫 경험을 안겨주는 셈이다. 그래서 더 부담된다. 난 명심해야 한다. 이들에게 기자 삶이 너무 만만하게 보여도 안 되고 너무 불합리하게 느끼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이들이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이들 역시 대한민국 기자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돼줘야 한다. 이들이 잘 성장하려면 첫 경험이 중요하다. 내 행동이 그들에게 어떻게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짧게는 4개월, 길게는 2년 동안 이들은 기자로서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하게 될 것이다.

사건 구걸하지 마

첫날 수습기자들에서 재차 강조했다. 수습기자는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알아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몇몇 기자는 경찰에게 구걸하듯 해 경찰이 기자를 얕보게 하는 구실을 주기도 한다. 한 번 만만하게 보이면 끝이다. 상호존중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다른 동료 기자들에게도 민폐다. 기자를 만만하게 보거나 얕본 경찰은 다른 기자에게도 그렇게 대할 가능성이 크다.


거듭 강조해야 했다. 수습이더라도 경찰과 대등한 입장에서 당당하게 사건을 요구하는 뻔뻔함이 있어야 하기에. 사실 무리라는 것도 잘 안다.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


선배는 다 안다. 경찰서에 첫발을 디딘 수습기자가 얘기될만한 사건을 가져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시도라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키는 것이다. 앞으로 기자 생활하면서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해야 하는 것들과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망설이기보다 부딪혀보는 기자가 돼야 한다. 그게 기자의 업이다.


물론 연차가 올라가다 보면 구걸하지 않아도 사건을 알 방법은 많다. 다만 그 노하우를 터득하려면 스스로 엄청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런 영업 비밀은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경찰의 부류

당직 경찰 입장에서는 밤에 오는 기자 대부분이 수습기자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더 만만하게 대한다.


이들 중 어떤 이는 수습을 문전박대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A4 종이에 면피용 사건을 적어 던져준다. 대부분 넙죽넙죽 이 종이를 받아 챙긴다. 나 역시 그랬다. 더러는 자기 자식처럼 측은한 마음으로 수습을 잘 대해주는 이도 있다. 다만 사건은 챙겨주지 않는다...


선배도 다 겪었던 일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거짓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 내용을 들으면 이게 면피용으로 받은 건지 아닌지 다 안다. 몇 단어만 들어도 다 안다. 


마치 자기가 취재한 것처럼 보고해봤자 본인만 우스워질 뿐이다.

사기 치지 말자

혹시 이 글을 읽는 이가 앞으로 수습기자가 되거나 이미 수습이 됐다면 선배를 상대로 사기치지 말 것을 조언한다.


"너는 첫판부터 장난질이냐.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구라 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냐?"


어쩌면 선배가 타짜의 명대사를 속사포로 날릴지도 모른다.

문득...

나의 첫 인턴 시절이 떠올랐다. 기자란 이름이 참 가벼웠던 시절...


부푼 가슴을 안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널찍한 사무실에 데스크 책상 앞에는 기자로 보이는 이들이 주욱 늘어서듯 자리하고 있었다.


열심히 타이핑하고 전화를 받는 모습이 TV에서나 봤음직 한 기자 모습이었다.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국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부국장 역시 30대 중후반쯤 돼 보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쳤다. 당시 인턴은 3명이었는데 자리는 이미 마련돼있었다. 내 뒤에는 3개월 먼저 입사한 이가 있었다.


그는 자기보고 선배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도 인턴 신분이었다. 다음 달에 정식 기자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별로 기뻐 보이진 않았다. 그냥 무언가 체념한 듯 보였다.


따르릉

직장을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거칠게 쏘아붙이듯 나를 불렀다.


"신 기자!!! 신 기자!!!"


어리둥절했다.


"전화 오잖아. 전화 좀 받아."


짜증이 섞인 말투였다. 어리둥절했다. 전화를 받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누구를 바꿔달라는데 알 리가 없었다. 공식적인 내 첫 업무는 전화 받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당황스럽긴 하다.

미션

오후가 되자 갑자기 기사를 쓰라고 했다. 팩스 앞에는 온갖 보도자료가 넘쳤다. 여기저기 의원실과 정부 산하 기관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였다.


 "단신 처리해"


'기사'의 'ㄱ'도 모르는데... 당황스러웠다. 다음 말은 더 나를 놀라게 했다.


"매일 보도자료 2건 이상, 취재 기사는 1건을 써야 퇴근할 수 있어"


"네...."


정말... 내 첫 기자로서의 경험은 최악이었다... 후배들에게 이런 황당함,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리는 선배가 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몇 개월 동안은 가르쳐야 한다. 신입을 바로 써먹겠다는 건 욕심이다. 아주 과한... 신입은 부품이 아니다. 앞으로 그 회사를 이끌어갈 소중한 자원이다.


난 다짐한다 

후배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후배가 좋은 기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끔 해주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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