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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가를 시큰하게 한 연탄재

츌근길 연탄재 향을 맡고 어릴 적 그때가 떠올랐다

by 광화문덕
꽃단장

오늘은 기자의 글쓰기 구독자분들과 만나는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웬일로 새벽 6시 전에 깼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를 만난다는 설렘에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떳나보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

어김 없이 횡단보도를 지나 골목길을 걸어간다. 오늘따라 낯익은 냄새가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늘 다니던 이 길은 내가 어릴 적 자주 뛰어놀던 골목과 닮았다. 난 그 길을 뱀길이라고 불렀다. 뱀처럼 구불구불해서다.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익숙한 연탄재 냄새에 난 마취되는 듯 했다. 오랜만에 맡는 일산화탄소 향이 꽤나 향기롭다. 시큼한 냄새는 나를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이끌었다.

향수

거대한 돌들로 이뤄진 산 밑에 허름한 집이 보인다. 기와가 깨져 있고,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땜질돼 있다. 집 앞 마당에는 3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초록색 세발자전거를 타고 한없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무엇이 그리 행복한지 "꺄르르" 웃는 소리가 온 동네를 울린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을 봤다. 수많은 계단이 놓여있다. 계단은 반듯하지 않다. 난관도 없다.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놓은 듯 보인다. 한 아이가 위태롭게 계단을 올라온다. 그러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6살 정도 된 아이의 바지가 갑자기 묵직해졌다. 응가를 한 듯했다. 아이는 울며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시골집이 보인다. 초가집처럼 생긴 볼품없는 집이다. 한 아이가 작은 방안에 앉아 울고 있다. 문밖에서는 사람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가 너무도 구슬프다. 아이의 엄마와 친척들이 울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울음 소리가 커지자 더 큰 소리로 운다. 아이는 아직 모른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 대해. 하지만 엄마는 안다. 이날 엄마는 엄마를 잃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은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향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랐다. 잊고 살았던 내 어릴 적 모습...

그리움

분명 지금이 그때보다 살기 편해졌다. 집 경제력도 많이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그때가 자꾸 그립다.


'왜 연탄재 향수가 그리울까...?'


지하철 타러 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대신할 수 없는 하나를...


바로... 부모님이었다. 난 어쩌면 건강한 부모님이 그리운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다가 늘 빗자루로 맞고 학교로 도망치듯 가곤 했다. 엄마는 내게 늘 힘센 장사였다.


택시 기사를 하시던 아빠와 함께 세차하는 걸 좋아했다. 차 시트 밑에서 줍는 5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너무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아빠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드림랜드. 아빠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던 그곳에서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람쥐라는 놀이기구를 탔다. 놀이기구를 타며 무서웠지만 아빠와 함께 놀이공원에 왔다는 것에 참 행복했다. 아빠는 늘 바빴고 늘 피곤해했다. 아빠와 놀이공원의 추억은 평생 이것 한 번뿐이었지만 행복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 아빠...

지금은 아빠도, 엄마도 많이 편찮으시다. 나이가 들고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너무도 자신의 몸을 혹사하신 탓이다.


이 때문에 오늘 아침에 우연히 느낀 연탄재 향을 놓치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 나이 37살이지만 가끔은 엄마 아빠가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다행히 지금은 바로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실 내 맘 속 깊은 곳에는 늘 두려움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들 속도 모르시는지 요즘 내게 자꾸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난 이제 살 만큼 살았다. 너만 잘살면 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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