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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한다는 것...

물건에는 이야기가 담기고 그것을 통해 과거의 나와 만나게 된다.

by 광화문덕
1~2년 동안
안 입은 옷 있으면
좀 꺼내줄 수 있어?


"응? 왜?"


"한 해 동안 입지 않았다면 사실상 앞으로도 입을 일이 없다는 거 아닐까? 우리가 안 입는 옷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잖아."


"응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여기에 담아주면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고 올 거야"


아내는 퇴근해 집에 온 참여를 종용했다. 말 잘 듣는 남편인 나는 옷방으로 갔다. 옷장을 열었다. 그동안 입지 않았던 옷들이 눈에 띈다. 티셔츠부터 점퍼까지 꽤 다양했다.


대학 시절 즐겨 입던 트랙슈트, 귀여운 캐릭터가 있는 반팔티, 누나가 사줬던 스웨터 등이 눈에 띄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입기 좀 그랬던 옷들. 대학생때에는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입기가 어색해진 옷들을 꺼냈다.


좀 오래된 옷들이지만 상태는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에게 기부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상태의 옷들을 골랐다.


내 옷장에는 많은 옷은 없지만 대부분이 크게 유행을 타는 스타일은 아니다. 늘 입지는 않으면서도 '언젠가는 입겠지'란 막연한 생각으로 쌓아둔 옷이 제법 됐다.


옷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했다. 90% 할인이라는 전단을 보면 아무리 먼 거리라고 하더라도 엄마의 손을 잡고 옷을 사러 다니곤 했다. 브랜드 옷은 입고 싶었는데 돈은 없었으니 그렇게라도 사려고 했다.


엄마는 그냥 시장에서 사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어릴 적 나는 철이 없었던 탓에 브랜드를 사고 싶어 했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들도 날 닮았으면 브랜드 사달라고 엄청나게 조르겠구나'란 생각이 들어서다.


뭐해?
이거 다 버릴거야?

옷을 꺼내다 추억에 빠진 나는 아내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음....... 그.... 게....... 안 입는 것은 맞긴 한데..... 그러니까.... 저.... 그...."


버린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멀쩡한 옷이고 내 추억이 담겨 있는 옷들이라는 생각에 버리고 싶지 않았다.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뭐? 버리면 되는 거지?"


"아니... 그냥 두면 안 돼?"


"버려야지. 안 입는 옷 둬서 뭐해. 집이 너무 복잡해. 좁은 집에 이것저것 다 두려고 하니까 정신도 없고"


"응 그래.. 그럼 버리자..."


아내는 내가 꺼낸 옷들을 큰 천으로 된 포대에 넣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 옷으로 거대한 더미가 만들어졌다.


'아내는 미련없이 버리는 것 같았는데, 난 미련이 많은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포대에 들어가 있는 옷들을 보니 자꾸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손대지 마!
내일 가져다 줄 거니까!

"응..."


아내의 냉철함은 대단했다. 정말 존경하는 아내이기에 더이상 아내에게 변명할 게 없었다. 그리고 아내가 잠시 방에서 아들을 재우고 있는 틈을 타... 포대에 들어가 있던 옷 두 벌을 꺼내 도로 옷장에 넣었다. 어릴 적 추억이 다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에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담긴 옷 두 벌을 꼼쳐 뒀다.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렵구나'


물건을 사고 나면 그 물건에는 내 이야기가 담긴다. 그 물건을 통해 난 과거의 나와 만나게 된다. 연인과 헤어지면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을 잊기 위해 물건을 버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난 내 과거를 잊고 싶지 않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물건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버려야 산다는 말에 대해 머리는 동의하지만 마음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특히 미련이 많은 내게 '무엇인가를 버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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