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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31. 2016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날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워지니 그동안 잊고 있던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7시가 넘었어

아내가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헉. 지각이다'


스마트폰을 찾아봤다. 없다. 어디에도 없다. 내 주위는 와이셔츠와 양말이 널브러져 있다. 술에 만취해 길바닥에서 잔 것이다.


속이 굉장히 쓰려 왔다. 대충 씻고 집을 나왔다.

굉장히 허전한 마음

스마트폰이 없으니 자연스레 주변 경관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부족한 잠을 앉아서 보충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던가...


'나도 늘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스마트폰만 보면서 살아왔는지 깨닫게 됐다.

회사 도착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었다. 숙취는 내 온몸을 쓰라리게 했다. 걸을 때조차 내가 나가 아닌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마음도 편치 않았다.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나쁜 기억

스마트폰을 마지막으로 잃어버렸던 게 2년 전이었다. 그때는 재수가 좋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99만9900원을 주고 산지 한 달도 안됐던 터라 상당히 기민하게 움직였다. 운전기사분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난 "여기요"앱을 통해 사이렌도 울려보고 했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다. 바로 아내의 스마트폰을 빌려 내 스마트폰 위치를 파악했다. 확인된 장소는 집에서 1km 정도 된 거리였다. 택시가 멈춰있는 듯했다.


다짜고짜 뛰었다. 정말 술에 취했음에도 열심히 달렸다. 헉헉거리며. 택시가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택시 문을 열고 "그 폰 제꺼에요"라고 외쳤다.


택시 아저씨는 움찔하면서 스마트폰을 안 주려고 했다. 난 "그거 제거잖아요"라고 연신 외쳤다. 택시 아저씨가 많이 당황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아저씨는 당시 최신폰인 내 폰이 신기했는데 이것저것 만져보고 계셨다. 전화를 왜 받지 않았냐고 추궁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찾았다는 기쁨이 더 컸다.


띠링띠링

"기자님. 스마트폰 택시 기사님이 가지고 계시다고 연락 달라고 전화 왔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이번 택시 기사님은 달랐다. 스마트폰을 찾아주시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셨다. 내 통화기록 중에 자주 연락하는 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신 것 같았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여보세요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선 감사 인사를 드렸다. 택시 기사님 위치를 파악해보니 회사에서 지금 찾으러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사례비를 챙겨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얼마를 드려야 할지 고민이 됐다. 회사까지 와 주신다면 10만 원 정도 챙겨드려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현재 위치에서 회사까지 왕복 6만 원정도 나오는 거리였다. '10만 원이 어쩌면 섭섭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죄송한데요. 제가 저녁에 퇴근해서 계신 곳으로 가서 받아갈게요"


연락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오라 가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택시 기사님께도 괜찮다고 가져다주시겠다고 했지만, 너무 죄송했다.


이 기회에 새 스마트폰을 하나 살까?

스마트폰을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아이폰SE가 가지고 싶을 뿐 다른 스마트폰은 굳이 추가 비용을 내고 살 생각이 없었다. 만약 아이폰SE가 판매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재 국내 출시 일정은 미정인 상황이다.


스마트폰으로부터 강제 휴가

솔직히 온종일 참 편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도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던 나였는데... 모처럼만에 커피를 마시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저마다 개성이 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함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님의 마음이 변하면 어쩌지...'


일단 통화가 안 되니 답답했지만, 7시에 뵙기로 했으니 6시 땡하고 퇴근했다. 사례금도 준비해뒀다. 


퇴근 길에서도 풍경은 비슷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껴 가면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쩌면 나도 저런 모습이었으리라...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공중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걸어가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 쓸 수 있나요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역 주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공중전화를 찾아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 아파트 상가 단지 내에 덩그러니 있는 공중전화를 찾았다. '공중전화가 참 많이 없구나'란 생각도 잠시, 메모해 둔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좀 오래간다. 불안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제발 제발'이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있을 때...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전 스마트폰 잃어버린 사람인데요"


"네 집에서 거기까지 10분 정도 걸려요. 00에서 봬요"


"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만날 장소로 이동했다. 10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사례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면 어떻게 하지?' 등에 대해서다. 내 나름대로 준비한 정성이지만... '찾아주시고 기분 상해하시면 안 되는데...'란 걱정이 생겼다.

빵빵

택시 한 대가 보였다. 택시 기사 아저씨였다. 택시로 뛰어갔다. 택시 아저씨는 "스마트폰 잃어버리신 분?"이라고 물었고,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차 창문으로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난 두 손을 모아 봉투를 건넸다.


택시 아저씨는 그냥 가셨다.

괜한 걱정을 했구나

어쩌면 택시 기사님이 스마트폰을 찾아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본인의 양심에 따른 것이지 무언가를 바라고 하신 것은 아닌 듯했다.


사례금을 얼마를 드릴지 고민했던 내가 죄송했다. 택시 기사님의 양심을 더럽힌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홀가분한 마음

집에 도착해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주인을 잃어버린 스마트폰에 집 충전기가 주는 안식을 주기 위해서다. 


나도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내게도 안식이 필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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