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선수범

바라는 것을 직접 하면 가정이 행복해진다

by 광화문덕
다릴 것 있으면 말해줘~
같이 다려줄게

총각 때에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침에 아내가 깔끔하게 다려 놓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그런 로망이랄까.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이건 현실이 될 수 없는 꿈이란 걸 바로 인지하게 됐다.

이유는 당연하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다. 아내는 아침에 일찍 출근해 녹초가 돼 돌아온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아내의 체력은 급격히 고갈되고 있다.


내가 일찍 퇴근하지 않는 날이면, 아내는 오롯이 독박 육아를 해야 한다. 주 중에 독박 육아로 지친 아내를 쉬게 하려면 주말엔 내가 육아를 해야 한다. 살림도 내 몫이다.


이런 전쟁 같은 일상을 사는 맞벌이 부부인 우리에게


"여보 밥 차려 놨어요. 출근하기 전에 먹고 가요"라거나

"여보 옷 다려놨어요. 오늘은 이 옷이 멋져 보여요"라는 것은...


진짜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 직시

사실 결혼하고 한 번은 투정해 본 적이 있다.


"나도 아내가 와이셔츠 다려줬으면 좋겠어"


"나도 남편이 다려주는 옷 입고 출근하고 싶은데"


괜한 소리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이 '다려입지 않기'였다. 꼭 다려입어야 하는 날이 아니면, 대충 입고 다녔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성장하고 있다

아이가 생기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서 인내심도 길러졌고,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더 깊어졌다.


요즘 아내의 모습을 자주 관찰하게 된다. 아프면 어쩌나 걱정에서다.


아이의 에너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혈기왕성해지고 있다. 이제 곧 있으면 5살이 되는 아들의 에너지는 아내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나마 나는 버틸 만 하지만, 아내는 반나절이면 녹다운이 된다.

체력이 더 많은 사람이 해야지

아내는 만성피로 증세를 보일 정도다. 아이에게 치여 내게는 더이상 관심조차 보여줄 수 없을 정도까지 왔다.


난 요즘 아내의 관심을 받기 위해 다양한 스킬을 시전하고 있다. 일단 아내의 가사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다.


주말에 요리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내가 만든 김밥을 좋아한다. 그 어떤 김밥보다 내가 싸준 김밥이 좋단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주 중에도 요리를 하려고 한다. 보통 저녁 8시쯤이면 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들의 주문을 받아 뚝딱 만들어 낸다.


저녁 후 설거지

설거지는 이전부터 내 몫이었다. 그 시간 동안 아내는 아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아무리 힘이 없어도 아들에게 책 읽어주는 것은 빼먹지 않는다. 아내가 아들을 돌보는 동안 난 잠시 쉰다.


책 읽어주느라 아내는 녹초가 됐고, 난 아들을 씻긴다. 샤워를 시키고 머리를 감긴다. 양치를 시킨다. 그리고 재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이런 하루가 반복된다. 만약 저녁 약속이 생기면 아내는 독박 육아로 에너지 고갈이 심해진다. 스트레스도 많아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

나 혼자 편하자고 아내에게 독박 집안일, 독박 육아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면서 공동육아, 공동 살림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눠서 하자는 게 지금은 아주 익숙해졌다.


난 주로 요리와 설거지, 빨래 널고 개기, 주말 육아, 쓰레기통과 분리수거 처리하기 등을 한다. 아내는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기, 주 중 육아를 한다.


내일 인터뷰하는 날인데

외대 교지에서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페이스북 '기자의 글쓰기' 페이지를 보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기뻤다. 흔쾌히 진행하기로 했다.


모교 소식에 나오는 것인 만큼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집에 있는 와이셔츠를 살펴봤다.

허걱

목에 있는 부분이 죄다 찌든 때로 얼룩져 있었다. 한숨이 나왔지만, 나 자신을 돌아봤더니 당연한 결과였다. 와이셔츠를 귀찮다는 이유로 손빨래하지 않고 세탁기를 돌렸기 때문이다.


아내 탓을 할 수도 없었다. 손빨래 감은 각자 하기로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터였다. 물론 난 그냥 세탁기에 의지했다. 손빨래까지 해야겠다는 의욕이 없어서였다. 다 내 게으름 탓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일정이 속속 잡히고 있어 안 되겠다 싶었다. 결국 이제부터라도 손빨래를 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와이셔츠 목에 찌든 때는 샴푸와 베이킹소다로 없앨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했다. 혹시나 싶어 삶기까지 했다.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와이셔츠 목 부분을 보니 후련했다. 새하얗게 변한 와이셔츠를 보니 기분도 좋아졌다. 이제 남은 것은 다림질이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다릴 것 있으면 얘기해줘, 다려줄게"


아내는 못 이긴 척 내일 입을 옷이라며 원피스 한 벌을 가져왔다. 내심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맞아. 누구든 하면 되는 거지. 내가 기대하는 만큼 아내도 바랐을 수도 있어'


가족이 행복해지는 비법

사실 결혼 초기에는 참 어렵게 보였던 명제가 있다. 바로 '가족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그런데 답은 굉장히 쉬웠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면 된다. 배우자가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하면 된다. 내가 배우자의 몫까지 해주면 된다.


설거짓감이 눈에 보이면 그냥 설거지하면 된다. 빨래가 다 말랐음에도 널려있다면 걷어서 개면 된다. 음식물쓰레기가 꽉 차 있다면 버리면 된다.


배우자가 하겠지란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하면 배우자가 행복해한다. 굉장히 고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상대가 내가 한 일을 몰라줘 속상하고 화날 수도 있다. 짜증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는 표현을 안 할 뿐이지 고마워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도저히 지친 날에는 조금 건너뛸 순 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다. 옛말에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있다. 내가 정말 지쳐있다면 배우자가 한다. 그게 바로 선순환의 시작이다.


나는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아내가 나를 위해 해주길 바라지 말자.
아내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처리하자.
그러면 가정이 화목해진다.

결혼 5년 차가 되어서야 조금씩 가정이 화목해지는 방법을 하나 둘 씩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