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날
아들을 마중 나가는 길
신호등 앞에 섰다. 차들이 꽤 밀려있다. 신호등 한가운데로 한 사람이 서 있다. 모범운전기사다. 수신호로 차들이 보다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2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져 걷기 불편하신 몸이지만, 내 기억 속 아빠의 40대 모습은 멋쟁이였다. 적당한 체격에 옷은 늘 날이 서 있었다. 엄마가 셔츠와 바지를 늘 다려주신 덕택이다.
아련한 기억
아마도 7살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으니 말이다. 당시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셨다. 택시 지붕 위에는 왕관 모양으로 된 택시임을 알리는 등이 있었다. 왕관 안에는 모범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있었다.
아빠는 주말이면 집 근처 사거리로 향했다. 상습 정체 구간 한가운데 서서 수신호로 차들을 통제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아빠가 수신호를 하는 동안 난 택시 안에 숨어있었다. 아빠의 택시 안이 마치 아지트인 양. 그 안에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빠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 마냥 기뻤다.
당시 난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다. 지나가는 아빠의 동료 택시 운전기사분들은 택시 안 나를 보고 "너 거기서 뭐 해"라며 놀리며 가시곤 했다.
새록새록 돋아나는
아빠와의 행복한 기억
그러고 보니 아빠와의 기억이 늘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나의 기억이 떠오르니 그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 많지 않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드림랜드'란 곳에서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이다. 당시 아빠가 차량 검사를 받기 위해 태릉 쪽으로 향했다.
보통 아빠는 주말에 차량 정비 또는 세차를 했는데, 난 늘 동행했다. 실내 정리는 내 몫이었는데 정리하면서 동전을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차 안을 구석구석 살피다 보면 어떤 때에는 500원도 주웠다. 당시 오락 한게임이 50원이었으니 500원이면 굉장히 큰돈이었다. 당시에도 그런 부푼 희망을 품고 아빠와 동행했을 것이다.
아빠는 이날 신체검사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빠가 신체검사를 받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이날 차량 및 신체검사를 마치고 아빠와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뭔가 아쉬웠다. 아빠에게 놀러 가자고 졸랐던 것 같다. 난 당시 겁이 없었던 것 같다. 놀이공원엔 무서운 놀이기구밖에 없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아빠는 당시 아이들의 꿈의 공간이었던 '드림랜드'로 향했고, 난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들어갔다.
다람쥐가 만만하게 보였다. 아빠한테 다람쥐를 같이 타자고 졸랐다. 아빠는 끝내 거절했고, 난 혼자서 다람쥐를 탔다. 타기 전까진 몰랐다. 다람쥐의 진가를.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다람쥐통이 돌기 시작했고, 앞에 앉은 사람의 주머니에선 동전과 물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찰랑찰랑' 소리와 함께 다람쥐통은 쉼 없이 돌았다. 난 마냥 신났다. 두렵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컸다.
사실 그리고 어디 어디를 돌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와 드림랜드를 갔었고, 다람쥐를 타며 난 아빠를 향해 손을 계속 흔들었고, 아빠도 그런 나를 보며 손을 흔들며 활짝 웃어주셨다는 것만이 내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돼 있다.
솔직히 많이 아쉽다
내 기억 속 아빠와의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게...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자식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는데, 가계수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아빠와 엄마는 쉼 없이 일하셨다. 마치 기계처럼. 일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셨다. 잠도 5시간밖에 못주무셨다. 그외의 시간은 늘 일을 하셨다. 밥먹으면서도 일하셨다...
그런 부모님께 난 늘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 가고 싶다고 졸라댔다. 철없이. 친구들은 다들 여행 간다며 대들기도 했다. 나를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도... 철없이...
하지만...
부모님은 현재 거동이 불편하셔서 어딜 가셔도 관광하시기 쉽지 않다. 지난해 부모님을 모시고 북경에 다녀왔는데, 관광을 거의 하지 못하셨다. 오전에 돌아다니시면 체력이 바닥이 나서 오후엔 쉬셔야 해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더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이런 후회 때문에...
난 주말이면 육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나도 늙을 것이고, 병이 들 것이기에... 하지만 적어도 가족과 함께했던 많은 추억을 가지고 싶다... 아내와 내가 더 나이 들어 함께 하지 못함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아들로 넘어갔을 때 아들이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이 없음에 슬퍼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