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Nov 01. 2016

#72. 개탄스러운 하루

포토라인은 무너졌고 국민의 알권리는 빼앗겼다

법조 파견

일요일 밤 9시가 넘은 시각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부장이었다. 법조 파견이라는 통보였다. 최순실 게이트로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힌 상태였고, 법조에 일손이 부족한 시기였다.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 최순실 씨 얼굴 보고 오라는 뜻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서울중앙지검

예전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 이후 오랜만이다. 당시 조사받으러 검찰에 출석한 박관천 경정이 나오길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참 많이 추웠다.

문화일보 1면에 실렸던 사진. 졸고 있는 것 아님.

기자실에는 파견 온 기자들로 북적였다. 특히 이날 오후 3시에는 최순실 씨의 검찰 출석이 예고돼 있던 터여서 취재 열기는 그 어떤 때보다 뜨거웠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만큼 최 씨의 멘트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매일 조간신문과 저녁 8~9시에 방송되는 뉴스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란 이름으로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이 밝혀야 할 혐의만 10여 개다.

출처: 연합뉴스

그만큼 이날 최순실 씨의 출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포토라인

기자단은 포토라인에 대한 정비에 나섰다. 검찰에 등록된 출입매체 기자 여부와 상관없이 현장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부 튀는 인물이 있긴 했지만, 비교적 원활하게 서로 포토라인에 최 씨를 세우자는 데 동의가 이뤄졌다.


잠시 후

시간이 되자 최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 씨는 감색 모자와 선글라스, 스카프를 한 채 얼굴을 가리고 에쿠스 차에서 내렸다. 50여 명의 검찰 관계자들이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그리고 포토라인에 서려는 찰나...


시민단체의 기습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검찰 입구 쪽에서 2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플래카드를 들며 최 씨 쪽으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최 씨 뒤로는 약 30명가량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박근혜 하야하라" 팻말을 들고 따라왔다.


문제는 최 씨가 포토라인에 선 이후였다. 뒤따라오던 이들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포토라인이 무너졌다. 최 씨는 무너진 포토라인 틈새로 검찰의 비호를 받으며 검찰청 안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들은 왜?

결과적으로 최 씨를 도와준 셈이 됐다. 국민 앞에 서서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말을 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자리를 피하게 된 셈이니 말이다.


난 의문이 들었다. '이들은 무슨 의도로 이곳에 나타났던 것일까'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들의 행위로 국민의 알 권리가 빼앗겼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에서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포토라인은 다르다. 수백 명의 취재진 앞에 둘러싸여 질문에 답을 하는 자리다. 예상했던 질문이 있을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했을 질문도 있을 수 있다.


국민 앞에서도 과연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지도 보고 싶었을 뿐 아니라, 최 씨가 과연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의혹에 대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 톤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국민에게 전파되고, 역사는 이날을 <<2016년 10월 31일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장본인으로 지목된 최순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이란 이름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쫓기듯 들어가며 남긴 검정 프라다 신발과 분노한 한 중년 남성이 검찰 유리벽에 던져버린 개똥더미, 저녁 식사로 최 씨가 먹은 곰탕 한 그릇만이 남았다.


그들이 차지한 포토라인

그들은 최 씨가 검찰청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자 포토라인을 점거했다. 그리고 한참을 외쳐댔다.


"최순실 구속하라", "VIP대접 받으며 검찰에 출두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청년들은 허탈하면서 분노했다"라는 구호를...


최 씨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음에도. 그들은 카메라를 향해 끝없이 외쳤다.

이날 하루도 역시나 상당히 추웠다. 밖에서 3시간가량을 떨고 있었더니 온몸에 한기가 파고들 정도였다. 허무함이 함께 파고들어 더 추웠던 것 같다. 나는 왜 이 오랜 시간을 여기에 서 있었던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리고...

검찰은 이날 밤 11시 57분 최 씨를 긴급체포했다. 최 씨는 검찰 조사에서 '비선 실세', '국정 농단' 등 최근 터져 나오는 각종 추문에 대해 일체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증거 인멸과 도망 우려, 극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 표출 등의 이유로 최 씨를 긴급체포하고 서울구치소로 이송했다. 최 씨는 더이상 포토라인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아직도 궁금하고 당시 상황만 생각하면 개탄스럽다.


'과연 최 씨가 포토라인에 서서도 의혹을 전면 부인할 수 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71. 그건 두려움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