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이 온 뒤 언젠가부터 자기 최면에 빠졌다
아 추워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다. 아침 출근길에 콧물이 주르룩 흘렀다. 안 되겠다 싶어 패딩을 꺼내 입었다. 아침 출근길이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스웨터를 하나 더 껴입었다. 그제야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옴을 느꼈다.
든든하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더이상 추위가 느껴지지 않아서다. 아침 출근길을 재촉하는 콧물도 사라졌다.
아 더워
퇴근길이다. 기자실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은 요즘 곤욕이다. 만원 지하철 속에 혹한기 복장을 한 건 나 뿐이기도 하거니와, 그 안에서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껴 있는 이 또한 나 때문이어서다.
남들은 가을이라 말하지만,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 추운 혹한기다. 퇴근길이 한증막 같지만, 그런 날이 반복되고 있지만 얇은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침 출근길 추위가 싫었다.
살을 파고드는 바람이 견디기 힘들었다. 땀이 나는 것은 닦으면 된다. 하지만 오한이 오면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난 몸이 차면 오한이 오곤 한다. 매번 그렇진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믿게 됐다. 몸이 유난히 차다고 느낀 날로부터 며칠 후면 꼭 오한이 찾아옴을 몇 차례 인지하게 됐다.
2년 전에는 온몸에 열이 40도까지 치솟는 날이 2주가 지속됐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라고 했다. 그 날이 있기 전에 몇 달 동안 난 마음이 한없이 추웠다. 어쩌면 그때 이후부터일지도 모른다.
두려움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러 잠시 밖으로 나갔다. 티셔츠와 바지만 입은 채로. 그리고 알게 됐다. 이렇게 입어도 되는 가을이라는 것을.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시원했다. 코끝을 시리게 하는 매서움도 가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난 출근할 때에는 다시 패딩에 스웨터를 껴입을 것이다. 그건 두려움 때문이다.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한다. 옷을 가볍게 입어도 된다고.
하지만 자꾸 의존하게 된다. 어쩌면 '옷을 입어야만 오한이 오지 않는다'는 자기 최면에 걸린 것일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생각쯤은 할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경험들이 내 삶의 굴레가 됐고,
난 그 굴레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