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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Nov 08. 2016

#74. 기자의 일상 '뻗치기'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면 확인해야 할 의무

법조 파견 2주차

주 월요일 법조 파견을 명받았다. 8년차지만 후배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여기저기 불려다니기 일쑤다.


파견된 기자의 역할은 뻗치기다. 취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현장 커버다. 아니면 관련 전문가들을 취재해 기사 쓰는 데 도움을 주는 정도다. 내부 정보 등을 취재해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엔 무리가 있어서다.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뻗치기'란 단어. 언론들은 '특종', '단독'을 얻기 위해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이 나타나기만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뻗치기'라고 일컷는다. 무작정 뻗대고 있다는 의미에서 온 것이리라 짐작한다.

뻗대다.
사전적 의미로 '(사람이)순순히 따르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다'다.

예를 들어, 새로운 총리가 내정됐다는 첩보가 들어오면 내정자의 집 등의 위치를 파악해 뻗치기한다.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물론 뒷 이야기 등이나 앞으로 펼칠 정책 등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다. 전화가 아닌 대면인 만큼 멘트를 들을 확률이 더 높긴 하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거대한 이슈인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에 개입한 이들이 매일 조간 신문과 저녁 메인 방송을 통해 터져 다. 이 경우 언론사는 가용 가능한 기자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뻗치기를 시키는 것이다.


뻗치기 요원이 많을 수록 '단독' 또는 '특종'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뻗치기 임무를 부여받은 기자 역시도 무언가를 하나 건질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고 임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다.


조선일보 객원 기자의 단독 사진

최근 뻗치기의 여운이 느껴지는 하나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조선일보 객원 기자의 취재 후기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했다. 그간 실패했던 뻗치기 취재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제 우병우 전 수석이 파인더에 들어온 순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고도로 집중했었던 때라 놀람보다는 빨리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이 단어에서 당시 느꼈던 기자의 짜릿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뻗치기가 주는 마력이다.


하지만 뻗치기 성공할 확률은 정말 희박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1%도 안 될 수 있다. 100% 운으로 볼 수 있다.


혹시나, 만에 하나를 위해 시도하는 것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도 이틀째 뻗치기를 하고 있다. 때론 동료 기자들과 함께, 때론 혼자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한다. 내 질문에 답을 해줄 그가 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가 왔다고 답을 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잡상인 취급을 받기 일쑤다. 문전박대도 다반사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뻗치기하는 기자를 만나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 만남이 유쾌할리 없다. 대부분 큰 사건과 연루됐다는 의혹이 단초가 돼 기자를 만나게 된 셈이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자에게 욕은 하지 말자. 할 말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될 일이다.


기자 입장에서도 뻗치기란 것이 업이기에 하는 것이다. 기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면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늘 만난 친구

마지막으로 오늘 만난 친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뻗치기하다 사귄 벗이다. 이름은 '스마트카피'.


그는 묵언 수행 중이다. 이틀 동안 묵묵히 내 옆자리를 지켜줬다. 복도를 지나가는 수많은 이들이 날 가엽게 봤을테지만... 그 덕택에 외롭지 않았다. 덜 초라해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네가있어서외롭지않았어 #고마워

#내가_이러려고_기자했나_자괴감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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