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기자의 현장 생존기
강남 사무실로
오전 출근길, 뻗치기 지시가 떨어졌다. 큰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은 여기저기 팔려간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이들의 입만 바라볼 수 없어서다.
기자들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직접 접촉하기 위한 취재 경쟁에 돌입한다. 의혹이 불거지면 의혹과 관련한 이들을 찾아 사실 확인을 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다.
끝까지 숨을 자신 없다면 언론을 피해봤자다. 숨바꼭질에 익숙한 기자들과 술래잡기해봤자 아마추어에게 향하는 것은 더 큰 의혹 더미다. 떳떳하게 언론 앞에 나타나서 해명하는 게 현명한 처사다.
언론은 수사권은 없다. 그저 국민이 궁금해할 것들, 사실 확인이 돼야 할 의혹에 대한 당사자의 입장을 듣고자 하는 것뿐이다. 당당하다면 기자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거나 말하기 싫으면 침묵하면 된다.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다.
변호사 사무실 앞
뻗치기 현장에 가면 수많은 기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차디찬 맨바닥에 말이다. 대리석이든 시멘트 바닥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앉아서 타이핑할 정도의 1평남짓한 공간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어쩌면 기자에게 '치질'은 직업병이다. 치질은 술을 많이 먹거나 찬 바닥에 오래 앉아 있는 이들에게 생기는 병이니 말이다. 볼 일을 빨리 봐야하는 경우가 많으니 힘줘서 볼 일을 봐야하는 기자에게도 치질은.... ㅠㅠ
8년차 기자의 뻗치기
현장에 가면 입사한 지 5년 미만의 기자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서로 얻은 정보를 활발히 교류한다.
나도 끼고 싶지만, 이들은 나를 경계한다. 잘 모르는 이가 다가와서 정보를 가로채 가려는 것이 반가울 리 없을 테니 말이다.
나도 생존방법을 마련했다. 친하지 않더라도 한 번 봤던 후배가 있다면 다가가 적극적으로 친한 척을 한다. 그도 때론 놀란다. 나 역시 살아남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그는 나를 모른 체 하지 않는다. 고마움이 뼛속을 파고든다.
오늘도 특검 사무실
탄핵 가결이 있는 날이다. 우리 팀은 헌재, 특검 사무소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난 오늘도 특검 사무실 뻗치기다. 아침 일찍 특검이 있는 강남 사무실에 도착했다. 1층 경비아저씨가 이제 낯익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무실이 있는 층에 내렸다.
여느 때와 같이 주위를 살폈다. 어디선가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응???? 나????? 너는 누구??????"
난 손을 자연스럽게 내리며 목인사로 대신했다. 뻘쭘함이 온몸을 감쌌다. 그는 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를 모른다. 서로 뻘쭘해졌다.
오늘은 기댈 곳이 없다. 폭풍 타이핑만이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노트북을 켜고 녹음기를 점검했다. 한자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