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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y 01. 2017

윗집 할머니가 내려오셨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된 참 길었던 하루였다

"띵동 띵동"


인터폰이 울린다. 자그마한 액정화면에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윗집 할머니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내를 대피시키고 문을 열었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내가 안그랬다니까!!!"


고성이 나를 반겼다. 할머니는 격하게 나를 나무랐다.


사연은 이렇다

오늘 새벽 2시반쯤부터 20분 가량 절구 찍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 4시에서 5시쯤이면 들리던 소리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꼭두새벽부터 들린다.


너무 피곤했음에도 더이상 잠을 이룰 수 없다. 눈을 뜨고 일어나 소리의 방향을 따라갔다. 안방 위에서 거실쪽 둘다 비등비등하게 들린다.


'왜? 누가? 이 꼭두새벽부터 무언가를 빻는 것일까?'


오늘은 관리사무소에 항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새벽출근길에 나섰다.


그리고 퇴근 후 관리사무소에 가서 윗집 할머니가 절구를 찍는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새벽 6시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윗층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아내는 아래층에서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사라지는 시기를 기록했다. 윗집에서 나는 소리였는지 확인차원에서다.


내가 윗집 벨을 누르자 쿵쾅쿵쾅 소리는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셨다.


"할머님 저희 집에 아기가 있어요. 새벽에 쿵쿵쿵 소리가 나면 애기가 깨서 무섭다고 울어요"


"내 집에서 마음대로 마늘도 빻지 못해? 뭐라고? 내가 왜 내 집에서 마늘을 못 빻아?"


당시 할머님은 순순히 인정하셨다. 마늘을 빻으셨다고.


"아니요 할머님 빻으시는 건 상관없는데요. 새벽 7시전이랑 밤 10시 이후는 좀 피해주셨으면 해요."


"왜 내가 내집에서 마음대로 못하냐고? 여기 이상하네. 왜 내가 못하냐고?"


할머님은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오히려 내가 문제란 식이었다. 난 더이상 말해봤자 않되겠다 싶어 포기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한달정도 잠잠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됐다. 시간은 대략 새벽 4시반에서 5시 또는 6시... 고장난 알람 시계처럼 쿵쾅쿵쾅 소리가 이른 아침이면 온가족을 깨웠다.  


난  더이상 분쟁은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또 올라가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러다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경비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비실 아저씨는 "올라가봤는데 할머니가 아니래요"라고 말하셔서 "아...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한달 정도 다시 잠잠했다. 하지만... 역시나 어김없이...


이사갈까도 생각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우리 가족은 소리가 나도 그러려니 하며 서로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흘려버리는 연습을 했다. 이 집에서 살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시계를 봤다. 2시반이다...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아내도 모두 깼다.


난 그 이후 잠을 못자고 출근했다.결국 이날 퇴근 후 관리사무실을 찾아 새벽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윗집 할머니가 내려오셨다. 경비실에서 할머니 댁으로 연락이 왔다며 "불쾌하다"며 아랫집으로 친히 항의방문을 하신 거였다.


"난 안했는데 왜 나보고 자꾸 쿵쾅쿵쾅했다고 난리여"


할머님은 아파트 복도 한복판에서 동네가 떠나가라는 듯이 굉장히 큰 소리로 호통쳤다. 인신공격성 멘트도 서슴지 않으셨다.


난 침착하게 대응해야 했다. 상대가 너무 격분해있어서였다.


"안방이랑 거실 위에서 쿵쾅쿵쾅 소리가 나니 윗층이라고 관리사무실에 말한거지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10여 분간 화를 쏟아낸 뒤 할머니는 "너 우리 아들한테 다 이를 거다"라며 엘레베이터로 뒤돌아섰다.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고 현관문을 닫고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 할머니의 고성이 다시 들려왔다. 분이 풀리지 않으신 듯했다.


멍...

난 집 안으로 들어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진이 다 빠졌다고 할까.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내가 나가서 이정도였지 않았을까? 당신이 나갔으면 더 했을지도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내를 보며 말했다.


지금도 윗층에서는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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