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Jun 09. 2017

김밥, 너한테 배운다

투자한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

오늘은 김밥이 먹고 싶네

퇴근 길. 아내하네 문자가 왔다. 아내는 담백한 김밥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 내가 싸준 김밥이다. 어떤 인공 첨가물 없이 재료의 맛만으로 어울어진 담백한 김밥. 그것이 내가 아내에게 사랑받는 비법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아내의 미소를 볼 수 있겠구나'란 생각에 재료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재료는 신중하게

사실 처음에 김밥 재료를 고를 때에는 가성비만 따졌다. 마트에 가면 김밥세트가 있고, 전체 재료 비용을 더하면 그것이 싸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런데 그 재료도 훌륭했지만, 고급스러운 식감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재료에 대한 욕심이 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당장 김밥을 싸는 김만 바꿔도 김밥 맛이 확 달라진다. 하물려 속안에 들어가는 햄이 고급이 되면 김밥 전체의 품격이 올라간다.


그런 것을 경험한 이후 김밥 재료를 고를 때 함유량, 성분을 꼼꼼하게 따지는 게 이제 습관이 됐다. 돼지고기 몇 %, 닭고기는 %가 들어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 세세하게 살펴본다. 만약 성분, 함유량 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절대 고르지 않는다. 아이와 아내에게 무조건 싸다고 먹이는 시기는 지났기 때문이다. 공산품이 아닌 먹는것과 관련해서 싼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이날은 고민이 됐다

난 햄만큼은 믿고 사는 제품이 있다. 바로 목우촌 햄이다. 가격대가 조금 높긴 하지만 식감에서는 단연 우수하다는 판단해서다. 물론 그냥은 사지 못한다. 그런데 그동안 재수가 좋게도 늘 행사가로 구매해왔다. 


그런데 이날은 행사를 하지 않아 비쌌다.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서있었다. 어묵과 단무지, 우엉은 늘 사던 것으로 고민없이 골랐다.


보통 재료를 만들어서 김밥을 싸면 10줄은 나온다. 김밥천국에서 사더라도 1만5000~2만원이다. 그러면서 자기합리화를 위해 애썼다. 


'목우촌을 사더라도 1만5천원은 넘지 않으니까 사도 될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집어 들었다가도...


'아니야 이건 너무 비싼 것 같아. 옆에 훨씬 더 큰 햄이 3500원이잖아. 성분 함유량도 큰 차이가 없잖아'


이러길 반복하다보니 벌써 10여 분이 지났다. 


어디야?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배고프다고 했다. 다급해졌다. 선택을 해야 했다.


'성분이 같으니 괜찮겠지모.'


성분 함유량에서 큰 차이가 없었기에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날 김도 새로운 김을 사보기로 했다. 며칠 전 구이김을 사러 갔을 때 아내가 사려고 했던 김 브랜드가 있었다. 그런데 꽤 비쌌다. 아내가 말하길 김 브랜드계에서는 오래된 브랜드라고 했다.


김밥 김이 놓여있는 선반에 그 브랜드의 김이 놓여있었다. 그래서 김도 그걸로 사보기로 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아주 싸지도 않았지만 비싸지도 않았다. 중간정도 가격인 1800원이었다. 포장지는 촌스러웠지만 아내의 추천을 믿기로 했다.


재료를 손질하고 김밥 말기에 착수했다

김밥 김을 꺼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주방 조명에 비춰보니 색깔이 참 좋았다. 바삭바삭해 보이는 질감이 식감이 기대될 정도였다.


햄을 꺼냈다.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싸구려 소시지의 포스가 느껴졌다. 조금 잘라 씹어봤다. 망했다. 고기 맛이 아닌 밀가루 맛이 강했다. 퍽퍽한 싸구려 소시지 맛, 딱 그맛이었다. 햄 맛이 아니었다. 불량식품 같았다. 모양만 햄이었다.


많이 넣으면 괜찮겠지란 생각에 햄을 크게 잘랐다. 평소 햄 크기의 3배 정도 크기로 큼직하게, 아낌없이 넣기로 했다. 


첫 번째 김밥 완성

아내에게 먼저 권했다. 큰 햄을 보고 놀란 아내는 한 입을 먹고나서 실망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껀 햄을 좀 적게 넣었으면 좋겠어"


"퍽퍽한 햄 맛이 너무 강해서 김밥의 맛을 다 버리고 있어"


'아.... 역시....'


햄을 반으로 자른 뒤 두 번째 김밥을 말았다.


아내는 이전보다 조금 낫다고 했다. 햄 맛이  덜 튀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싸구려 햄 맛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아내가 대안을 제시했다.


"치즈 좀 넣어볼까?"


치즈를 넣어 세 번째 김밥을 쌌다. 치즈 맛이 햄의 싸구려 풍미를 보완해줬다. 하지만 목우촌 햄의 고급스러운 햄 맛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김밥이 조직과 같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김밥을 싸며 얻은 깨달음

김밥은 조화로움이 중요한 음식이다.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야 하는 음식이다.


전체를 감싸주는 김이 있고 그 안에서 여러 재료를 공고히 결집시켜주는 밥이 있다. 그 속에서 햄과 어묵, 계란, 단무지, 우엉 등이 각자의 맛을 간직한 채 조화를 이룬다. 어느 하나가 튀지 않아야 한다. 서로 최고라고 나서면 조화로움이 깨진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팀의 실적을 위해서는 조화로움이 필수다. 누군가 튀려고 한다면 누군가를 그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개인주의만 있어서는 안된다 배려, 이타주의가 필수다.


때론 팀의 성과를 위해 서로가 보완적인 존재가 돼야 한다. 


고도의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조직원에 대한 투자는 필수다. 고급 재료를 통해 김밥의 품질이 높아지듯 말이다. 


조직원에 대한 투자 없이, 조직의 품격이 높아질 수 없다. 투자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김밥이나 조직이나 마찬가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