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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Sep 03. 2018

#13. 와인은 보물찾기

가게의 품격은 가성비 좋은 와인에서 비롯된다

설렘과 두려움의 교차

저녁 자리에 가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주문을 한다. 와인 가게 서빙하시는 분의 추천을 받기도 하고, 와인 리스트를 보고 내가 직접 고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보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주문하게 된다.


나는 믿는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리스트를 메뉴판에 넣었다는 것은 요리와 와인의 마리아주를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와인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레스토랑 가게 분위기를 위해 섣불리 리스트를 만들게 되면 그건 결국 독으로 돌아오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 역시도 와인을 파는 가게에 가게 되면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와인리스트를 살펴본다. 가격대를 꼼꼼히 살펴보고 이름도 열심히 뚫어져라 쳐다본다. 물론 와인리스트에 있는 와인들은 대부분 내가 모르는 와인이지만...

오늘 자리는 이러이러한 자리인데
어떤 와인이 괜찮을까요?

종종 서빙하시는 분들께 여쭤보곤 한다. 모를 땐 물어보는 게 최고 아니던가!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있다.


"가격대는 2~3만원대 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 정보를 서빙하시는 분께 말씀드리면 내 지갑 속 상황에 맞는 와인을 추천받을 수 있다.


손님,
어떤 스타일의 와인을 즐기시나요?

서빙하시는 분이 이렇게 물으시면 와인의 나라와 구체적인 라벨이 아니라 느낌을 설명하면 된다.


내 경우엔 "너무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레드와인 중에서는 좀 무겁고 복잡한 과실향이 나는 것을 좋아해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와인리스트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서빙하시는 분과 와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운 좋게 상당히 와인 애호가급의 서빙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면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더 나눌 수 있어 유쾌하다. 물론 다음 번에 찾아갔을 때 나를 알아봐주시니 서비스도 더 잘 받게 된다.


주문을 하고나면 그때부터는 또다른 즐거움이 생긴다. 어떤 와인일까 상상하다보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현재 나의 얕은 내공 탓에 와인가게에 가면 주로 프랑스 와인을 고르려고 애쓴다. 그래야 함께 있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 분위기가 쳐지지 않도록 대화 주제를 이끌어 갈 수 있어서다.

가게의 품격

많은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2만원대 와인이면 도매가는 1만원 초반이거나 그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주문한다.


하지만 간혹 정말 놀라운 맛과 향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와인이 있다. 그럴 때 난 거침없이 외친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대단해!!!!!"


가성비 좋은 와인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그날 저녁 자리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좋은 와인은 와인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가성비 좋은 와인을 주신 가게 주인님께 감사하며 가게 이름을 메모해둔다. 그리고 주변에 알리려 애쓴다. 이건 그 가게의 품격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다.


사실 와인을 고른다는 것은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일 것이다. 요리 메뉴를 선정하고, 일관된 맛을 내기 위해 연마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거기에 요리와 잘 맞는 와인을 골라 리스트를 꾸린다는 것, 이런 일련의 과정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입맛이 다르고, 모두가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경우 향과 맛에서 느껴지는 복잡함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반대로 어떤 이는 비단 같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와인을 선호하기도 한다. 가게 주인 혹은 쉐프가 파스타에 맞는 와인으로 A, B, C를, 스테이크 등 고기 요리에는 D, E, F를 마리아주라고 생각하고 메뉴판을 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룰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손님에게 있다.

마리아주(mariage)는 와인과 요리의 환성적인 궁합을 일컷는다. 와인과 요리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서로의 맛과 향을 살려주는, 그러면서도 개별적으로 맛봤을 때에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것을 말한다.


요즘 난 되도록이면 저녁 자리에서 와인을 마시려고 노력한다. 시끌벅적한 가게보다는 조금 외진 곳에 있더라도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가게, 넓고 화려한 가게가 아니라 아담하고 소박한 가게, 귀한 사람들과 오붓하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


와인 잔을 나즈막하게 '쟁'하고 부딪히며,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희노애락을 나누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며 마시는 와인 한 잔.


분위기도 좋은데 가성비까지 좋은 와인을 겸비한 곳이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 어찌 아니 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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