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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17. 2019

#53. Oblivion(망각)

나를 기억에 묻고 너를 그 위에 다시 묻는다

오늘 밤도

실처럼 가느다란 음이 뽑아져 나온다. 탱고의 상징인 반도네온으로부터. 서두르지 않는다. 마디마디 구슬프게 절규하듯 내 가슴을 후벼 판다. 나의 죄를 나무라듯...

반도네온(bandoneon) : 아코디언 종류로 아르헨티나 탱고의 대표적 악기


그러다 따뜻함이 느껴진다. 슬픔 뒤에 오는 위로가 이런 것일까. 날카롭게 파고들던 음이 작아지며 날 위로하듯 부드러운 선율이 퍼져 나온다. 내 삶의 힘든 괴로움과 고통을 마치 잊어버리라는 듯. 마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내게 말하는 듯하다.


결국 마지막에 가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반도네온의 낮은 파동이 내 마음속 깊은 상처를 자극한다. 비극 영화를 본 것 같은 슬픔이 밀려온다. 여운이 깊다... 나도 모르게 다시 듣기를 누른다.


탱고에 빠지고 난 뒤 기분이 울적할 때면 수없이 듣는 곡이다. 바로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Oblivion(망각)'.

내 삶의 중요한 키워드
 망각...

망각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잊어버림'이다.


요즘 자꾸 '잊어버림'이 잦아졌다. 물건도 기억도. 정작 잃어버리고 싶은 아픈 추억은 가슴속 깊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탱고는 19세기 아르헨티나의 항구도시 라보카로 모여든 가난한 이민자들이 타국에서의 힘겨운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악이었다. 그들은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한 뒤 고단함을 달래려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면 채워질 수 없는 외로움에 탱고를 췄다고 한다.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탱고를 들으면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첼로가 주는 또다른 외로움과 위안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내린
망각이란 정의
모든 인간의 행위에는 망각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의 생명에는 망각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혀 잊히는 것뿐이다
나를 기억에 묻고 너를 그 위에 다시 묻는다
나를 기억에 묻고...
너를 그 위에 다시 묻는다...

망각이 주는 선율도 여운이 길고 깊지만,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자신의 음악인 '망각'을 두고 말한 것 역시 두고두고 음미해 볼만 하다.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느껴보고 싶은 명문 이어서다... 상처의 노예가 되어 망각이 일상이 되어버린 내겐 말이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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