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웹툰에 관한 글을 보여드린 차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1996년에 연재가 끝난 '슬램덩크'가 26년 만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슬램덩크는 현재 30~40대 아저씨들이라면 안 본 사람이 드물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죠. 그리고 우리들에게 뜨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슬램덩크를 만나
처음 슬램덩크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어릴 적 이모집에서 사촌 형이 VHS 비디오로 보고 있었죠. 그때 저는 드래곤볼을 좋아하던 꼬꼬마라 사촌 형에게 '이거 재밌나?'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던 형이 '슬램덩크 모르나? 이게 요즘 최고다'라고 답했지요.
당시 한국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는 농구대잔치가 인기를 끌고 있어 농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농구 만화인 슬램덩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공 하나에 행복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전 구기 종목을 그렇게까지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형이 농구 선수를 하고 있었기에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슬램덩크는 꽤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출이 너무나 늘어져 슛 한 번 하는데 5분 넘게 결렸기에 이후 비디오를 챙겨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요. 그 후, 슬램덩크의 인기는 점점 더 커져서 꼬꼬마들에게까지 퍼져 웬만한 10~20대 남자는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우연히 손에 들어온 슬램덩크 만화책은 정말정말 재밌었습니다. 앞서 발행되었던 단행본을 다 봐야 했죠. 그리고 다음 단행본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의 늘어지는 연출에 비디오는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한창 각종 책을 많이 읽을 때였기도 했고요. 이후, tv방영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ost는 제 또래라면 다 기억하실 겁니다.
캐릭터와 그들의 서사
경기가 박진감이 넘치는 것도 재미에 한 요소겠지만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참 좋았습니다. 북산 멤버뿐 아니라 상대 선수들, 심지어 작은 조연들까지도요. 하나하나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는 소설의 인물에 관한 내용을 슬램덩크의 캐릭터를 인용하여 설명하여 주셨기도 했지요.
이제 갓 농구를 시작한 농구 초보이자 주인공인 강백호뿐만 아니라, 에이스 서태웅, 도내 No.1 가드 송태섭, 불꽃남자 정대만, 고릴라 주장 채치수, 심지어 든든하게 베스트 멤버들을 지켜주는 안경선배와 매니저 그리고 감독님까지 모두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성격과 서사를 가지고 있지요. 또한 주인공팀인 북산고가 아닌 다른 학교 선수들, 백호를 항상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 그리고 백호와 같이 농구를 시작한 1학년 농구부 친구들까지 모두 매력적입니다. 그러기에 아직도 많은 캐릭터들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야기되는 이야기
농구만 아는 바보들이 참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게 했지요. 그렇기에 그들은 한 만화의 캐릭터로 존재하기보다 우리들에게 친구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슬램덩크의 인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단행본이 판매되고 있으며, 왼손은 거들뿐, 농구가 하고 싶어요,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종료예요,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난 천재니까 등 몇몇의 명대사와 명장면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며 많은 곳에 패러디되어 쓰이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이 돌아왔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지요. 더욱이 애니메이션화 되지 않았던 전국대회 산공공고전을 드디어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아저씨들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결과, 극장판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온오프라인으로 입소문이 타면서 올해 개봉 첫 백만 영화가 되었습니다. 저도 미루고 있다가 설 연휴에 사촌 동생을 만남김에 보고 왔습니다. (경기 마지막 슬로우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북산 엔딩
지금 10대들에게는 만화 '하이큐'를 말하면 공감할 수 있을까요? 여기도 배구만 아는 바보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미소에 가슴이 뜨거워지지요. 그들을 보면 꿈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청춘과 꿈이란 이런 것이라 말해주지요. 아저씨들에게 슬램덩크란 그런 존재입니다.
슬램덩크의 결말은 만화로서 평범하지 않습니다. 북산은 절대 지지 않는 우승팀, 제왕인 산왕공고를 기적적으로 이기고, 이후 경기에 져서 전국대회 토너먼트에서 탈락합니다. 멤버들은 기적 같은 승리에 몸은 한계를 맞이했고, 강백호는 경기를, 아니 농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몸 상태가 되지요. 이후, 농구를 포기하지 않고 재활훈련을 하며 코트로 복귀하려는 강백호로 만화가 끝이 납니다. 이런 끝맺음이 얼마나 특이했던지 이와 같이 기적적으로 승리 후 패배하여 탈락하는 것을 '북산 엔딩'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 결말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만화의 주인공이면 우승하는 것이 당시 만화의 당연한 결말이기 때문이었죠. 지금도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회분위기가 있지만 과거에는 더욱더 심했습니다. 1등 외에는 들러리이며, 아무도 기억하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존재였죠. 심지어 올림픽 은메달은 욕을 먹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1승 후 탈락이라는 것이 어린 저희들에게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고 현실성을 가진 만화라고 받아들였죠. 그래서 더 명작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후 세상을 살아보니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강백호가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북산고 선수들의 농구는 계속되며, 그들의 꿈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도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꿈도 열정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알게 되었지요. 그 산왕공고 전의 기적 같은 승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힘든 순간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그리고 그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흘렸던 땀과 노력했던 시간들이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요.
그래서 이제 아저씨가 된 저희들은 슬램덩크의 결말을 전국대회 토너먼트 탈락이 아니라 최강 산왕공고 전 기적의 승리로 기억하는 것이겠지요.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현실
그런데 의외로 현실이 더 만화 같더군요. 2012년 부산 중앙고가 전국대회에서 2회전 탈락이 아니라 준우승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산의 한 학교가 우승도 아닌 준우승에 무슨 특별한 일이냐고 생각이 드시겠지요.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만화보다 더 만화 같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우선 이 학교의 선수는 6명뿐입니다. 그중 한 명은 길거리 농구 선수입니다. 코드에서 뛰는 선수가 5명이니 교체 선수가 1명뿐이지요. 교체 선수가 없기에 당연히 체력소비도 다른 팀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2명이 퇴장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4명이 뛰어야 하지요. 농구를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농구에서 5 반칙으로 퇴장하는 일이 꽤 흔합니다. 그러니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지요.
예선전에서 부상으로 한 선수가 더 이상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5명이서 본선 토너먼트를 치러야 했지요. 그 5명은 기어코 결승전에 도달합니다. 결승 상대는 용산고, 허재 선수의 아들인 허훈이 있었던 팀으로 당시 최강 팀으로 불렸지요. 결승전에서 중앙고의 두 선수가 5 반칙으로 퇴장당하면서 3-5로 경기를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이 소식을 기사로 접하고 너무나 감동적이라 페북에 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승하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악조건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명뿐이지만 슬램덩크에서와 같이 목표는 전국제패였습니다. 그래서 노력할 수 있었고, 북산고보다 더 대단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이 그 성적에 만족하지 않았기에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만화를 보면서 만화 같은 일이라고 치부하지만 재밌고, 몰입감을 주는 것은 실제로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존재하고 있지요.
실제로 더 자세히 찾아보신다면 더 믿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화의 힘은 상상
만화는 무엇이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작품들이 상상의 산물이죠. 그렇게 그려진 상상이 지면과 웹에서 현실이 되는 것이 만화입니다. 그래서 웹툰 글에서 말했듯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 같은 일들을 '만화 같은 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자세히 들여본다면 '절대가 아니라 같은'이라는 확신이 아닌 추측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런 일들이 현실에도 가끔이지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중앙고의 선수들처럼요.
우리도 원하는 것을 꿈꾸고 상상하며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만화에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상상을 그림으로, 한 편의 이야기로 구체화시켜 줍니다. 그리고 구체화된 꿈은 한발 더 현실에 다가가게 합니다. 만화는 그렇게 상상의 힘을 극대화시켜 줍니다.
그러니 만화를 보면서 만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종이와 웹 안에만 묻어두지 말고 원하는 것을 상상하세요. 만화의 주인공들을 응원하듯이 자신에게도 응원해 보세요.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보세요. 그렇게 우리도 이 생의 주인공이 되어보아요.
상상을 현실의 '만화 같은 일'로 실현해 봐요.
요즘 글 쓰는 것이 조금 힘듭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조금 있지만 출판이라는 목적이 너무 먼 거만 같아 의욕이 떨어집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급해지고 주위의 말들이 귀에 들어오면서 자신감을 잃게 되네요. 그래서 우선은 좋아하는 소재를 글로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가볍게 관심사를 이야기하면서 추억을 나눠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 중에 만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e-sports에 관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작년에 슬램덩크보다 북산고보다 더 만화 같은 일이 있었거든요. 대유행어였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중꺽마'가 나왔던 사건입니다. 이 글도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쓰고 싶었는데 어찌 이리되었네요. 그럼 다음글도 기대해 주세요.
햄아~ 슬램덩크 극장판 나온 거 아나? 무려 산왕공고전이다. 이제 꼰대 아저씨가 돼서 만화는 안 본다고 하려나? 그래도 슬램덩크데. 아님 거기서 벌써 봤으려나... 극장판 소식을 들었을 때 행님 생각이 나더라. 행님이 방에 앉아서 슬램덩크를 보던 그 옛날도 떠올랐어. 이 글을 쓰다보니 옛 생각이 좀 나더라고. 농구와 슬램덩크는 행님과 떨어질 수 없잖아.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과 마음이 들었어.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나에겐 행님을 기억할 수 있는 페이지 될거 같아. 그러니 행님을 위한 페이지라고도 할 수 있을지 않을까?
햄아, 어느 곳에 있던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 그리고 아프지 않은 무릎으로 농구 재밌게 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