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 안에 있는,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에 가는 날이야. 형이 이미 투어를 예약해놨어. 그래서 ottaviano역에 8시까지 가야 했어.
이른 아침이라 아침잠이 많은 난 비몽사몽 나왔지. 형이 이끄는 대로 지하철을 타고 역에 도착해서 지상 출구로 나오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 가이드에게 가서 출석 체크하고 사람들이 다 모인 걸 확인 후 출발!!
멀리서 바티칸의 외곽 성이 보이는데 높더라. 수원 화성 정도 되려나. 입구는 아직 멀었지만 줄이 벌써부터 보였어. 설마가 역시나, 대기줄이었어. 얼마나 긴지 기겁할 정도였어. 심지어 한 명이 한 줄로 서는 줄이 아냐. 3~4명이 한 줄로 서는 두꺼운 줄로 내 생애 이렇게 긴 줄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우리도 그에 따라 줄을 섰어.
그런데 바로 입장하는 게 아니었어. 9시부터 입장. 그래서 모두 바닥에 앉아 기다렸지. 외향적인 형이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자동적으로 끼여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어.
줄에 전 세계 남녀노소가 다 있어. 잠도 오고 사람이 많으니 벌써 지치는 기분이었지만 기다리면서 전 세계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건 의외로 흥미롭고 좋은 경험이었어.
그러는 중에 팻말에 종을 달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보였어. 그들의 말로는 돈을 더 내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이 가능하게 해 주겠다는 거야. 누군가 가이드에게 물으니 여행사에서 미리 산 입장권을 주어서 줄 서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어.
역시 바티칸도 자본주의인가. 종교에서 돈이 많고 적음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건 고정관념이라는 걸 알았지. 과거 면죄부를 생각한다면 많이 좋아진 건가. 음..... 시간도 자본이니까 돈과 교환하는 것도 공평한 것인가......
9시가 조금 넘자 줄이 앞으로 가기 시작했어. 입장하는데도 한참이 걸리는데 이게 끝이 아니야. 바티칸도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같이 입국절차를 받아. 단, 여권 검사는 하지 않아. 비행기 탈 때랑 거의 유사하다고 보면 돼. 짐 검사를 꼼꼼히 해. 아마 테러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어. 더욱이 종교와 관련된 곳이니까.
ㅂ입장권은 가이드가 예매해줬어. 그때, 입장권 사는 곳에서 어제 같이 여행했던 일행들을 만났어. 타국에서 하루지만 아는 얼굴이라 반갑더라고. 간단히 인사하고 바티칸 안으로 들어갔어.
바티칸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Saint Jerome in the Wilderness>, 지오반니 본시 작. <성모자와 성 호노리우스, 니콜라우스, 바돌로매와 세례요한>
투어 팀 모두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물 밖으로 나갔어. 성 베드로 성당 쿠폴라가 보이는 작은 정원이었어. 그곳에서 가이드의 간단한 소개와 구경할 피나코 데카(회화관)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 이곳에는 종교 회화들이 전시되어 있어. 하지만 들어가면 입구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모조품이 눈길을 끌지.
피에타 설명을 듣고 더 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감상을 했어. 작품들은 시대순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종교 회화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리 그려졌는지 알 수 있었어. 그리고 당시 무엇을 중시하고 유행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라 다들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그중에 단연 인기작은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이야. 그 앞에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더 많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어.
라파엘로의 그림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폴리뇨의 마돈나>, < 그리스도의 변용>, <성모의 대관>
라파엘로 작. <그리스도의 변용>
생각보다 엄청 컸던 피나코 데카를 나오면 큰 솔방울이 있는 솔방울 광장이 있어. 12시가 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어. 다시 바티칸을 나갈 수 없기에 옆에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와 차만 마셨지. 그곳에서 우연히 대학생 두 명과 합석했어. 이런저런 아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보냈어. 이 짧은 시간에 인연이 되어 나중에 또 등장하게 돼.
솔방울 정원
점심시간이 끝나고 솔방울 광장에서 나중에 만날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어. 천정화가 있는 곳에서는 말을 할 수 없기에 외부에 있을 때 설명을 미리 들었어. 그 후, 다음 장소인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으로 갔어. 들어가면 팔각형으로 된 작은 정원이 있고, 그 주위로 조각상들이 있어. 그곳에 유명한 벨베데러의 아폴로와 라오콘이 있지. 역시 이 두 곳에 사람이 가장 많아.
벨베데레의 아폴로
안으로 가면 뮤즈의 방, 원형의 방, 그리스 십자가의 방, 촛대의 방, 아라찌의 방, 지도의 방으로 구분되어 주제에 맞게 전시되어 있어.
여기서 아라찌만 생소할 텐데, 아라찌라는 건 카펫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보면 돼. 그래서 카펫이 걸려 있어. 그러나 보라는 카펫은 안 보고 천장을 보고 왔어. 천장이 조각인 줄 알았지만 가이드 설명으로는 그림이라는 거야. 3D 렌더링이 따로 없어. 다른 방도 마찬가지야. 봐도봐도 조각 같아.
아라찌 방의 천장.
원형의 방
그 뒤로 성모의 방, 라파엘로 방이 있어. 라파엘로 방은 콘스탄티누스의 방, 오도르 방, 서명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 총 4개로 나뉘고, 그만큼 라파엘로 작품이 엄청 많아. 그는 콘스탄티누스의 방을 제작하다가 사망했고, 나머지는 제자들이 완성했다고 해. 가장 인기작은 입장권에도 있는 아테나 학당이야. 이 그림에는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엄청 유명한 54명의 학자들이 등장해. 그리고 이 그림의 또 다른 재미는 라파엘로를 찾는 것. 그리고 그의 의도를 느껴 보는 것.
아폴로 이후 미술관의 방부터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자동적으로 걸어가며 구경하게 됐어. 사람의 힘에 밀려가는 무빙워크야. 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지. 그래서 깊게 감상을 하기가 어려워. 그냥 쓱하며 보는 수준이야. 정말 사람 너무 많아. 정말정말 많아!!
라파엘로 작 <아테나 학당.>
시스티나 성당 (Cappella Sistina)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솔방울 정원에서 들었던 간단한 설명과 주의 사항을 상기했어. 반드시 정숙할 것, 그리고 촬영 금지. 성당에 출입 가능한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앞에서 기다릴 것.
이 성당은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이야. 그만큼 바티칸에서 큰 의미가 있어. 이곳에 내가 유럽 여행을 오게 된 이유 하나가 있지. 그래서 입구에서 기다릴 때 두근거렸어. 얼마 후, 작은 문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시선은 천장으로 향했어.
드디어 천장화를 보게 됐어.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란 별명을 가진 그림 말이야. 어릴 적 우연히 TV에서 본 천장화는 나를 사로잡았어. 그리고 유럽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반드시 보고 오겠다고 다짐했지.
물론 시스티나 성당에는 라파엘로, 산드라 보티첼리를 비롯한 당대의 최고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어. 하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지. 천장을 볼 뿐이야. 보통 많은 기대에 많은 실망이 따른다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어. 기대 이상이었어. 마치 천장에서 그림이 태어났다는 느낌이야. 창세기 내용을 표현했다지만 정말 생명을 부여받은 그림이었어.
그리고 목이 아파 다른 벽면을 보니 제대 위에 벽면을 가득히 채우는 최후의 심판이 보였어. 최후의 심판의 내용은 영화나 소설에서 소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유명하지. 그것을 미켈란젤로가 그림으로 옮겨 놓은 거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오른손에 따라 천국으로 가는 자들, 왼손에 따라 지옥으로 가는 자들로 표현되어 있어. 역시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거 같았어. 당대에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잘 표현했으니 그렇지 않을까? 그리스도 옆에 성모 마리아와 12제자까지는 알겠는데 나머지 부분은 성경을 몰라서 어떤 인물을 표현했는지 모르겠더라. 다만 기독교인이 그림을 본다면 아마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할 거야. 그럴 수밖에 없을 거 같아. 아! 여기에도 미켈란젤로가 숨어있어. 이 그림에는 얼굴은 없어서 가이드 설명을 들어야 알 수 있을 거야.
목의 아픔이 가시자 다시 천장을 바라봤어. 성당 벽으로 앉을 수 있게 해 놨는데, 마침 빈자리가 생겨서 그곳에 앉아 편안하게 천장을 봤어. 그렇게 한참을 빠져있다 투어팀에서 정해준 시간이 다 되어 나왔어. 한동안 멍~한 상태에 빠졌어.
성 베드로 성당 (Basilica di San Pietro)
성 베드로 성당의 돔.
투어팀의 모든 인원을 확인하고,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갔어. 여기서도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지정된 시간을 받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어. 성당 쿠폴라로 갈 수 있다고 들었지만 가지 않았어.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치이며 긴 줄을 서고 싶지 않았거든. 형과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따로 구경했어.
성당 안은 회색 기둥과 벽에 검정 검정한 느낌이라 묵직하고, 장식이며 돔이며 반짝반짝해서 엄청 화려했어. 돔은 미켈란젤로가 최종 설계했다고 해. 판테온 같은 넓은 돔은 아니고 유럽 다른 성당에도 볼 수 있는 볼록한 돔이었어.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크지.
구경하는데 이상하게 감정들이 배배 꼬이는 느낌이었어. 신을 만나 기도드리는 곳이 아니라 재력을, 힘을 자랑하는 곳 같았어. 마치 나를 따르라는 게 아니라 굴복하라는 듯이 말이야. 전 세계의 성당은 성 베드로 성당보다 크게 짖지 않는다고 해. 한국의 개신교 교회는 그렇지 않지. 다른 종파니까 그렇겠지? 이미 한국에서는 명칭도 다르잖아. 성당, 교회라고 말이야. (성당과 교회라는 명칭을 유럽인들한테 말해줬더니 비웃음 샀던 기억이) 요즘 한국의 대형 교회에 비하면 큰 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 정도로 만들 재력이면 500년 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큰 성인들의 석상도 마음에 안 들고 너무 화려해서 눈 부셔.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아. 이게 다 내가 종교를 믿지 않아서겠지.
성 베드로 성당 내부와 발다키노
발다키노 (Baldacchino)
성당 한가운데 있는 제대 위에 발다키노가 있었어. 베르니니 작품이지. 멀리서 볼 때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가니 엄청 커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 판테온에서 떼어온 청동을 썼다는 말도 있어. 그만큼 엄청 커. 황금색과 검은색이라 성당과 잘 어울려. 하지만 장식도 화려하고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그런지 복잡해. 내가 느끼기에는 too much, 과도해.
이곳은 성 베드로의 성합이 있는 곳이니 이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잖아. 화려한 성당에 오히려 단조로운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면 더욱더 중요한 공간이라고 사람들은 느낄 거라 생각해. 진리란 복잡해 보이는 세상 속에 명료한 단순함이라고 생각하거든. 신의 말이란 종교를 가진 자들에게는 진리잖아. 그리고 신과 인간의 중계자인 교황의 미사 하는 곳인데 이렇게 화려하면 황제의 발다키노와 다를 게 없잖아. 그냥 예술을 모르는 한 일반인의 생각일 뿐이야.
발다키노의 상단 부분
피에타 (Pietà)
성당 뒤쪽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그곳으로 갔어. 그리고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다가가지도 않았지만 나를 사로잡아 버렸어. 한 어머니가 쓰러져 늘어진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대리석상이었어. 다들 알다시피 미켈란젤로 3대 조각상중 하나인 피에타야. 어떤 이들은 이를 보고 신성하다고 느끼겠지만 난 기독교인이 아니라 그런지 너무나 슬폈어. 내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일까 봐 사람 많은 곳까지 가지 못하고 멀리서 혼자 바라볼 뿐이었어.
힘없이 축 늘어진 마른 몸의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는 아직 몸에 남아있을 아들의 영혼과 대화하는 듯이 눈을 감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자신의 아들로 태어나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함과 그동안 고생했다고, 잘했다는 칭찬과 사랑을 담아 그것을 아들에게 전하기 위해 내면에 집중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어. 그래서 피에타를 보면 볼수록 보내야 한다는 슬픔과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음의 단념, 아이러니하게 아들이 드디어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감사함과 안도감 같은 복잡한 마음들이 전해지는 것 같았어. 마치 이 생에서 업을 마친 모자의 마지막이 전해지는 것 같아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어. 미켈란젤로가 어떠한 마음으로 조각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런 감정에 빠뜨려 묶어 버렸어. 그런 나는 가까이 갈 수도, 사진도 찍을 수가 없어서 한참을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감정에서 빠져나와 멀리서지만 눈으로 자세히 조각상을 볼 수 있었어. 근육들과 옷깃, 그리고 수많은 손질에 의해 매끈해진 대리석, 성인인 아들보다 크게 표현된 어머니. 그리고 가이드에게 들었던 간단한 설명들을 확인했어. 여러모로 '예술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어.
미켈란젤로 <피에타>
많은 것들이 머리와 가슴에 맴돌았어. 그래서 성당을 나와 베드로 광장을 바라보며 형과 투어 일행을 기다렸어. 견학이나 소풍으로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가면 구경하고 생각하느라 가장 늦게 나오는 나지만 그렇게 일찍 나와 기다리게 되었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미켈란젤로는 엄청난 그림을 남기고도 조각가로 불리고 싶어 했는지, 조각만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어.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왜 그를 질투했는지, 부러워했는지 알 수 있었어. 신의 내려주신 재능. 진짜 천재는 미켈란젤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형 말에 의하면 나는 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 이야기만 했다고 해. 정말로 바티칸에 가서 수많은 명작들을 봤지만 마음에 남은 건 미켈란젤로의 이 세작품뿐이야.
성 베드로 성당의 바닥
바티칸 광장과 오벨리스크
투어팀이 다 모이고 간단한 소감을 나눈 뒤 인사를 했어. 바티칸 광장은 행사 준비로 의자가 가득이었어. 그래서 외곽 쪽으로 걸어가 우체국으로 들어갔어. 바티칸도 나라니까 엽서를 보내야겠지. 엽서 그림 중에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이 있어서 그걸 골라 한국으로 보냈어. 이곳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직원이 엽서를 받는 게 아니라 해당 가격의 우표만 줬어. 그래서 우체국 밖에 있는 우체통에 넣었어.
그러고는 광장을 나오자 중앙에는 오벨리스크가 있고, 광장 외곽 건물 위에는 성인들의 석상이 보였어. 이 정도면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유물이 아닌가 싶어. 로마에 태양신 숭배 사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바티칸까지 있는 걸 보면 오벨리스크가 태양신과 연관 있다는 건 루머라고 생각될 정도야.
종교 탄생 과정을 보면 외부에서 전해진 종교가 토착 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종교문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그곳에서 종교도 적응해야 하니까 말이야. 아니라면 큰 이질감에 거부감부터 들 거야. 그래서 쉽게 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지.
로마의 경우 정치적 목적도 일부 있어. 특히 대제국을 이루고 유지할 수 있었던 최고의 요인으로 타 문화의 장점을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특징이 있어.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종교는 더욱 혼합된 성향이 강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 남아있던 문화와 종교는 많이 희미해졌고, 그에 따라 고대 로마의 건축물과 신전이 사라졌지.
하지만 오벨리스크만은 굳건히 있어. 신기할 만큼. 로마가 이토록 오벨리스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아니면 오벨리스크 위에 십자가를 설치함으로써 태양신 위에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가톨릭보다 앞선 유대교와 관련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종교의 출발은 태양부터 인가? 종교로 만들어진 국가에서 이것저것 궁금했어.
성 베드로 성당 외부
젤라또는 필수
광장을 벗어나면 바티칸 밖이야. 이제 다시 로마. 근처에 젤라또 가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바티칸 외곽성을 따라 걸어서 가게 맞은편에 도착했더니 역시나 줄이 길었어.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이탈리아 여름날에 젤라또를 그냥 지날 칠 수는 없잖아.
주문할 때, 놀랐던 건 직원 중 한 분이 한국말을 해. 한국 사람이 아냐. 20대 초반의 이탈리아인 같았어. 긴 말은 안 되고 간단한 인사와 주문을 받는 정도라고 설명하는데 놀라웠어. 더 놀라운 건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와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고 했어. 정말 대단했지. 아무리 한국인이 많이 온다고 해도 발음이나 어순이 어려울 텐데 말이야. 재능이 있거나 전 여친이 한국인이거나겠지. 형도 나도 왠지 좋은 서비스를 받은 거 같아 기분이 좋았어. 긴 수다를 떨기에는 줄이 너무 길어 젤라또를 받고 나왔어. 젤라또는 역시 맛있어. 이탈리아는 젤라또야. 모두 최소 하루에 한 번씩은 반드시 젤라또!!
지하철을 타고 떼르미르역에 내려 게하로 걸어갈 때, 조용하고 등 뒤로 노을이 비추고 있어서 동네 산책하는 기분이었어. 이제 내일이면 로마를 떠나.
그래서 오늘 밤도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 앞에 가서 맥주 한잔 했지. 내일 점심 약속도 있고 해서 일찍 들어와 게하에서 짐을 싸고 잘 준비를 했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로마였어.
바티칸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한데 사진을 얼마 찍지 못해서 같이 간 형의 사진을 보여드렸어요. 절반 이상이 형의 사진이에요. 사람은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해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피에타 사진도 형의 솜씨입니다. 저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피에타 사진을 남기면 안 될 거 같아서 찍지 못했어요. 저는 왠지 독립투사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이 생각났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네요. 하지만 본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이 명작이라는 것은 모두 느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