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피렌체로.

여행 17일. 이탈리아 7일.

by 어린왕자

2014년 6월

로마


로마를 떠나는 기차는 오후로 예약해놨어. 그래서 기차를 타기 전에 짐 정리를 마치고 로마 마지막 구경을 나갔지.


주목적은 형의 지인에게 구매 부탁받은 물건이 있어서 그 매장을 들리고, 이틀 전에 같이 여행했던 일행들과의 점심 약속이야. 어제도 바티칸에서 우연히 마주쳤으니 삼일 연속으로 만나게 됐어. 로마에서 갈 장소가 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연이란 건 신기해.


콜로세움에 자석이라도 달렸나 봐. 또 무심코 콜로세움 쪽으로 걸어가다 '여기가 아닌데' 하고 베네치아 광장 방향으로 걸어갔어.


대도시 속을 걸어가면서 고대 유물을 찾는 건 꽤 재밌어. 물론 서울에도 이런 재미들이 숨어있기는 한데 여긴 한국과 다르게 생겼으니까, 나에겐 생소하니까 눈이 더 갈 수밖에 없었지. 현대 건물들 사이에 고대, 중세 건물들이 끼여 있는 거 보면 유적이 아니라 일부러 고전풍 인테리어 해서 지은 거 같았어. 그만큼 조화로워. 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 조화로움을 추구하고 노력한 것 같아 좋았어.


길 끝에 콜로세움




다시 피자 도전


한국에서 유행하던 액세서리나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니 점심때가 되었어. 베네치아 광장 근처쯤에서 약속한 이들과 만나 점심 먹을거리를 찾아다녔어.


그러다 이틀 전 먹었던 피자집 근처에 있는 다른 피자집에 갔어. 날이 그리 덥지 않아 야외 테이블에서 피자를 먹었어. 여기도 마찬가지로 1인 1 피자야. 오늘은 그다지 기다리지 않고 피자를 먹을 수 있었어. 기대하지 않고 먹어서 그런지 맛이 이틀 전보다는 꽤 괜찮았어. 서빙도 빠르고, 계산도 빠르고 좋았어. 당연히 한국 식당들과 비교 불가지만 그리 불편한 건 없었어. 이곳에는 로컬들이 아닌 외국인들이 많아서 그런 듯했지.


테이블에 휴대폰을 놓고 먹었는데 외국에서는 이런 행동은 아주 위험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고 가거든. 사람들에게 주의를 받긴 했지만 한국에서의 버릇이 금방 고쳐지지는 않았지. 참 어이가 없지만 타인의 물건이 보이면 들고 가는 게 당연한 곳이라니! 한국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점들이 참 좋아.


이후 가죽 세공품 가게에 들렀고 우린 기차 시간이 다 되어서 인사를 하고 짐을 찾으러 게하로 향했어.



소매치기


생각보다 시간 여유가 없었어. 걸으면 20분이 넘는 거리였기에 버스를 탔어. 탈 때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정거장을 지날수록 점점 많아지더라. 떼르미르역 행은 특히 많은 거 같았어. 한국에 아침 출근 버스 수준이었지.


정거장에 들릴 때마다 뒤로 밀리고 밀려서 키 작은 어린 남매 앞에 서게 되었어. 그 보다 여자 아이가 자신보다 더 어린 남자아이를 이끌고 굳이 내 앞에 서려고 했던 게 맞아. 그래서 공간을 내주었고 별생각 없이 그렇게 서 있었어. 하지만 사람은 더 많아져서 완전히 붙어서 가게 되었지. 여자아이 키가 내 허리 높이 정도밖에 안 되었길래 아이에게 압박이 가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주어 버티고 서 있었어. 도로는 엄청 막히고 버스 노선은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가서 골목길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거보다 더 오래 걸렸어. 그동안 나는 점점 지쳤지. 그리고 떼르미르 전역에서 그 남매가 급하게 내렸고, 여자 아이가 물건을 바닥에 던지는 게 보였어.


형이랑 나는 바닥에 던져진 물건이 내 물건인 거 같은 느낌을 받았어. '앗!! 저거' 나는 얼른 내 가방을 확인했어. 역시나 가방이 열려있었지. 여권이랑 돈은 그대로 있었고, 비닐케이스에 넣어놓은 이어폰이 없어졌어.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던 물건은 내 이어폰이었어. 그리고 그 아이들의 정체는 소매치기.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만차인 버스에서 내릴 수가 없었어. 이 아이들은 이 사실을 노리고 버스에 탄 거였어. 이런 상황에서는 뒤쫓아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상당히 해본 경험자였어. 이어폰을 들고 다니면 줄이 꼬일까 봐 비닐케이스에 넣어놨는데, 그게 지갑인 줄 알고 훔쳐갔던 거야. 역시 아이들인가.


이어폰을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기차 시간이 다 되었어. 그리고 다시 가면 이미 없어졌을 거야. 얌전히 내 옆에 있는 물건도 들고 가는 곳인걸.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리고 돈이나 여권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어. 정말 아이들이라고 방심하면 안 돼. 로마는 가장 많은 소매치기가 있는 관광지라는 것 절대 잊어선 안 돼! 특히 이어폰 조심해.


로마 거리




떼르미르 역에서


게하에 돌아와 짐을 챙기고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역으로 갔어. 우리는 정문이 아니라 역 측면에 위치한 대형 상점을 통해 들어가서 해당 플랫폼으로 가는 길을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플랫폼만 쳐다보며 길을 따라가다 작게 적힌 안내문을 발견하고는 살펴보고 있었지.


그때, 어떤 여자분이 다가와 '도와드릴까요?'로 말을 걸었어. 우리는 웃으며 '플랫폼을 찾고 있는데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어. 하지만 우리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몇 번 플랫폼이냐고 플랫폼이 어딨는지 가르쳐줄 테니 따라오라는 거야.


여기서 문뜩 주의사항이 기억났어. 이탈리아 기차역에는 플랫폼으로 이끌어 주거나 그곳까지 짐을 들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야. 역시나 짐을 나누어 들어주겠다는데, 굳이 왜? 그래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지. 알아서 가겠다고 했어. 어차피 안내문으로 가는 길을 알았으니까.


길은 외길이야. 역 앞쪽으로 가야 했어. 여자분이 앞에서 걸어가니까 뻘쭘하더라. 왠지 좋은 사람 의심한 거 같았거든.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고 원하는 정보는 찾았으니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아. 그러니 이탈리아 기차역에서 낯선 이가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도 '도와드릴까요?'로 말을 건다면 '괜찮아요'로 대답해주면 돼. 그리고 혹시나 진짜 선의일 수 있으니 그분이 민망하지 않게 미소로 답 해줘.


결국 기차역 가장 앞쪽까지 왔어. 그냥 정문 입구로 들어올걸. 역시 초행길에는 정문부터 안내문 따라오는 게 제일 쉬워. 어쨌든 다행히 늦지 않고 정확한 플랫폼에 도착했어.


기차 내부는 깔끔하고 편했어. 캐리어 놓는 곳도 따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어. 그곳에 캐리어와 백팩을 놓고 자전거 자물쇠로 걸어 놓았지.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안내 방송이 나왔어. 1시간 30분 정도 거리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중간정차역이 없었어. 외국에서 이런 기차의 편한 점은 정차할 때마다 긴장하지 않고 편안히 갈 수 있다는 것. 내가 내릴 곳에만 정차하니까 얼마나 좋아. 더욱이 기차에서 남의 짐을 들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그럴 걱정도 확 줄어들지. 그래서 편하게 갈 수 있었어.




피렌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여기는 피렌체야. 유럽 도시중 가장 와 보고 싶었던 곳. 역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이 근처에 있어.


피렌체에는 역이 두 곳 있으니 예매를 잘해야 해. 어디 어디 중앙역이라고 표기하기도 하지만 한국과 달리 지명을 안 쓰는 곳이 많았어. 꼭 지하철 역처럼 말이야. 아마 역이 많아서 그렇겠지? 그래서 예약할 때마다 구글맵으로 확인했어. 혹시나가 있으니까 말이야. 엉뚱한 곳에 내리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그것도 처음 가본 곳에. 뭐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겠지만 힘들긴 하겠지?


역을 나와 주위를 걸으며 둘러보니 중세 도시가 그대로 있다는 걸 알았어. 기대했던 그대로야. 고대 도시에서 기차 타고 와 중세 도시라는 게 신기해.


우선 게하가서 짐을 정리하고 나니 해가 질 때가 다 되었어. 게하 사장님 말로는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피렌체 거리에 사람들이 많다고 했어.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지. 그래서 목적지는 그곳으로 정해졌어.


피렌체 두오모




피렌체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그전에 피렌체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으로 갔어. 바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소설 <냉정과 열정>에서 남녀 주인공이 만나기로 약속했던 피렌체 두오모야.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면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는 것이 형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


그래서 사전답사를 갔어. 찾는데 어렵지 않았어. 어디서든 두오모 쿠폴라가 잘 보였거든. 중세의 큰 도시라 그런지 길도 잘 되어 있어. 꼬불꼬불 길이 아니라 직선인 데다가 블록 형태를 띠고 있고, 블록마다 랜드마크처럼 기억할 수 있는 건물들이 있어서 길 찾기도 쉬웠어. 그리고 그냥 걷다 보면 두오모가 나와. 두오모란 말 그대로 도시의 상징과 같은 성당이니까 중심에 있어서 그런 거 같았어. 그리고 두오모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어. 로마와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내는 곳이지만 유럽에 벌써 익숙해진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낯설지 않았어.


도착하자 느낌이 '여길 오긴 오는구나'라는 묘한 감정들이 들었어. 오늘은 성당 출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형은 오늘보다 내일을 계획하고 있기도 해서 내일 쿠폴라에 오르기로 했어. 아마 시간이 되었다면 그냥 올라갔을 거야. 오늘도 내일도 좋은 건 두 번 하면 두배로 좋으니까. 대신 두오모 주위를 돌며 구경했어. 사람들이 엄청 많을 줄 알았지만 앞쪽에만 많고 생각보다 없었어. 아마 출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았지.


두오모 앞에 산 조바니 세례당은 공사 중이라서 막혀 있었어. 아쉽기도 하고 막혀 있어서 그런지 답답해 보였어. 대신 종탑 옆에 어느 정도 공간이 있어서 쉬면서 구경하기 좋았어.


그리고 그 주위에 추천받은 젤라또 가게에 갔어. 복숭아 맛을 추천받았지만 없었어. 당황했지만 다른 맛을 주문해서 먹었지. 역시나 젤라또는 최고야. 반드시 1일 1 젤라또는 필수!!


피렌체 두오모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에서 노을


산 중턱에 넓은 공간이 있고 석상 하나가 보인다면 그곳이 미켈란젤로 광장이야. 그러니 피렌체 어디서든 알 수 있겠지? 그래서 광장만 쳐다보면서 걸어갔어.


아르노 강을 건너는 도중에 옆에 다리가 베키오 다리라는 걸 알 정도로 마냥 걸었어. 딱 마침 노을이 질 때라 사진을 찍고 갔지.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는데, 포토존이었어. 노을은 어디 가든지 참 아름다운 풍경이야. 하루의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노을과 베키오 다리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


다리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면 광장으로 가는 많은 계단을 만날 수 있어. 언덕 높이만큼 제법 걸어 올라가야 해. 생각보다 긴 계단에 다들 힘들어하더라.


도착했더니 광장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되어 있었어. 아마 폭죽 때문이겠지. 그래서 계단 입구부터 사람들이 서 있었고, 도로만을 비워두고 통제선 앞과 광장 앞에 있는 레스토랑 앞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광장에서 보는 피렌체 풍경을 못 보고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서 주변을 한참 방황했어. 그러다 시간이 지나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과 낮은 담(?) 사이에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해 줬어. 그래서 우리도 따라 들어갔지.


어찌하다 운이 좋게도 낮은 담 위에 앉았어. 다들 너무 일찍 온 건지 기다리다 지쳐 자리를 비웠거든. 그리고 경찰들이 와서 광장 앞에 있던 사람들을 다 뒤로 물렸어. 그래서 어쩌다 보니 우리가 가장 앞자리가 되었어. 내 앞에 사람은 안전요원, 경찰, 소방관뿐. 한마디로 대박 VIP석.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본 노을과 베키오 다리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본 베키오 다리
통제된 미켈란젤로 광장




불꽃놀이


1시간 가까이 지나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불꽃놀이가 시작됐어. 하늘에서 불꽃들이 펑펑 터지는데 피렌체에서 불꽃놀이를 보다니! 그것도 최고의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어.


1시간 정도 해서 꽤 오랜 시간 했지만 솔직히 불꽃놀이 자체는 한국에서 자주 보기도 했고, 한국에서 워낙 화려하게 하니깐 상대적으로 그렇게 까지 좋거나 멋있지는 않았어. 다만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중세시대에 멈춰버린 피렌체로 내리는 풍경이 정말 좋고 특별한 거 아니겠어? 아마 관광객으로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 거라 생각해. 다만 사진 찍을 때 통제선 같은 게 있으니까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다비드 상 중심으로 불꽃놀이를 해서 두오모 배경으로 사진 찍기가 쉽지가 않아 조금 아쉬웠어. 그리고 광각 렌즈를 저에게 주세요~~


피렌체에서 불꽃놀이


불꽃놀이가 끝나 사람들이 빠르게 광장을 빠져나갔어. 한국이라면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닌데 사람들이 훅하고 빠져나가서 신기했어. 한국사람들만 볼 거 보고 빨리 가는 게 아닌 거 같아. 긴 계단을 내려가는 중에 사람들이 불꽃놀이에 흥분되었는지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거 같았어. 우리도 내려오면서 소감을 나누었지.


계단을 다 내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뭐하는지 서 있었어. 골목마다 바(bar)가 많아서 어느 곳으로 갈지 정하려고 서 있었던 거 같았어.


많은 사람에다 도로에 차도 가득해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어. 생각지도 못한 복잡함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앞만 보며 걸어 나왔어. 아르노 강을 따라 걷는데도 쉽게 사람이 줄지 않았어. 확실히 불꽃놀이의 파워는 세계 어느 곳이든 대단한 거 같아.


제법 걸어 다리를 건너니 사람이 줄었고, 주위 풍경을 볼 여유가 생겼어. 중세 유럽 거리는 참 아름다워. 아르노 강이 옆으로 흐르고 나트륨 등의 노란빛이 강과 돌바닥에 은은하게 반사되는데, 이런 게 유럽의 낭만인 거 같았어.


사진도 찍고 주위를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카메라 SD카드 용량이 다 차 버렸고, 예상외의 인파에 녹초가 되고 말았어. 확실히 가까운 도시라도 이동하는 게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은 거 같아. 우리는 강을 따라 걸어 그대로 게하로 들어갔어. 그리고 내일 쿠폴라에서 볼 피렌체 풍경을 기대하며 잠들었어.


피렌체 두오모와 불꽃



예상 밖의 불꽃놀이에 행복했던 하루였어요. 대신 광장에서 보는 피렌체를 눈에 담지 못 해서 또 가게 되었어요^^. 다음 주 이야기는 두오모와 미켈란젤로 광장입니다. 짧은 일정에 또 가고 싶을 만큼 좋았어요. 대신 다른 곳을 못 갔지만요. 그리고 다음 주에 쓸 사진이 저장되어 있지 않았어요 TT. 교체한 SD카드 문제 같은데 정확히 모르겠어요. 결국 다음 주 사진은 같이 간 형의 사진으로 대체할 겁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피렌체를 또 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네요. 반드시 꼭 갈 겁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피렌체에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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