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포함된 사진을 원한다면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야외 사람이 포함되게 찍는 게 쉬운 편이었다. 그럴 때 찍지 말라며 다가선 사람도, 찍은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렸을 때 지워달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폰으로 사진 찍기가 늘어난 이후에는 분위기가 변했다. 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찍고 있는 순간이었는데도 누군가 다가와 ‘허락 없이 나 찍지 말라’고 말라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폰 덕분에 사진 찍는 것 자체가 확 늘었기 때문이고 더불어 폰을 이용해 쉽게 사진들을 이리저리 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
자, 그렇다면 어떤 사진을 찍기 좋을까.
사진 찍기 만큼 흔해진 것 중 하나가 코로나 19다. 코로나 19가 늘면 늘수록 사람들이 모이는 수는 줄어든다. 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가서지 못한다. 지금 삶이 그래야만 한다면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거리를 둔 그 순간이야말로 기회이기 때문.
코로나 19로 인해 거리를 둬야만 한다면 그렇게 보이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보자.
사진이 알려지던 초반을 떠올려보자. 특히 앙리의 사진을 보면 요즘 쓰기에 전혀 어색하거나 모자라지 않다. 오히려 요즘 나오는 사진들보다 더 훌륭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가 특정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찍은 사진도 많다. 그러나 그런 사진들보다 제법 멀리 있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이 더 많다. 아마 그 당시에는 요즘과 달리 찍지 말라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텐데도 그렇다. 사진의 중심 근처에 사람들이 있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의 중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사람이 아닌, 사람 주변이 느낌의 중심이지 않을까. 특히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는 사진은 계단과 길이 실질적인 중심이다. 물론 사람이 있기에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을 확률이 높다. 정확하게 누구를 찍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참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한번 사진으로 찍어보자. 사진이 전하는 느낌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지 알 수 없기에 안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확실한 느낌을 전할 수도 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작게 찍으면 어떤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실제로는 점처럼 작아 보이지만 사진 결과의 느낌으로는 묵직하게, 특별하게 전해준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의 크기가 비록 작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쁜,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도 된다. 사진의 목적이 그런 얼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사람으로 보이게 찍으면 된다. 그렇게 찍어야 뜬금없이 사진 지워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웃으라고 쓴 글이 아니다.) 따라서 안심할 수 있는 동시에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사진에서 사람은 전체의 약 1/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더불어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성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상대방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과, 단순하게 이야기하다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남성의 행동은 알 수 있다.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행동은 대충 알 수 있는 것. 세로로 찍은 사진이기에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아도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기도 하다. 소리는 물론이고 사람의 얼굴을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사진의 힘이 아닐까.
더불어 사람을 전체적으로 찍었지만 뒷모습으로, 어둡게 찍은 결과다. 한 남성이 여성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에 촬영했다. 둘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진 역시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아쉽다거나 안타까운 느낌은 없다.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행동 그 자체가 사진 결과에 느낌을 전해준다. 그러니 사진 찍을 때 비교적 멀리 있는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자. 아무리 작아 보여도 사진에 전달하는 느낌은 묵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특별히 찍는 게 아니라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어디인가’다. 다만 사람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사진일 때 심심한 느낌을 전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이 들어간 사진이 필요하긴 하지만 굳이 누구인지 찍을 필요는 없다. 한강에서 찍은 이 사진은 하늘의 구름과 풍경이 중심이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심심한 사진이 올 수 있다. 세로로 된 그림자로 마치 두 장의 사진이 하나로 합친 것처럼 보인다. 친구 둘이 함께 있는 모습과 혼자 서있는 사람이 각각 거리를 두고 있기도 하다. 이 사진의 중심은 멀리 있는 서울의 모습이지만 어두운 곳 덕분에 두 컷의 사진이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어두운 곳이다. 그 어두운 부분이 밝았다면 어색한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더불어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나왔다면 쉽게 올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태안 신두리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곳이며 아름다운 곳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긴다. 길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조금 높은 곳에서 친구와 함께 폰으로 찍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그곳을 넓게 전체적으로 찍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진은 흔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곳을 즐기는 사람들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앞모습을 찍은 사진은 홈페이지 등에 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뒷모습 위주로 찍었다. 이 사진들의 중심은 사람들이긴 하다. 그러나 뒷모습을 찍어야 했고 그 결과는 의외로 나쁘지 않다. 매우 특별한 모습은 아니지만 즐기고 있는 느낌을 찍을 수 있었다. 즐기는 사람들은 뒷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사진을 찍던 순간에는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해지기 얼마 전이었고 어느 연인이 서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행복한듯한 모습을 찍은 결과다. 빛을 정면으로 찍었기에 사람이 어둡게 찍혔다. 비록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즐기고 있는, 행복한 느낌은 풍성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어느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 저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이 없었다면 그저 보케들만 아름답게 찍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덕분에 조금 더 아름다운 결과로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을 중심으로 찍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오히려 더 큰 힘이 나타날 수 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의 뜻 중 하나는 ‘누가 됐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한 빛 덕분에 사람들이 어둡게 찍혀 결과적으로 더 나아졌다. 만약 저 사람들에 맞춰 카메라의 밝기를 바꿨다면 강물 쪽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보케들도 제대로 찍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순간에는 빛과 그림자를 정확하게 나눠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사진을 찍은 곳은 자전거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다. 살짝 먼 곳에서 살짝 광각으로 찍었다. 그 덕에 사람을 비교적 작게 찍을 수 있었다. 사람을 어둡게 찍었기에 그나마 한강이 제대로 보이는 편이다. 두 번째 사진은 촬영한 사진을 일부러 밝게 수정한 결과다. 촬영 시 실제로 밝게 찍었을 때 저런 모습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다. 하단에 다양한 잡초들이 함께 보였을 것이고 선들이 조금 더 많이 보였을 것이다. 결국 사람에 집중하는 듯한 느낌은 사라졌을 확률이 높다.
바닷길에서 걸어 다니던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가을 끄트머리에 찍었던 사진. 제법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찍었다. 쓸쓸한 느낌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잡초들의 줄기와 잎을 더 많이 보이게 찍었다. 사람은 사진 전체 중 10%도 되지 않는 정도다. 그 숫자로 보면 참 별것 아닌 사진일 수 있다. 그러나 걸어 다니던 사람의 실제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기기에는 이 정도가 나쁘지 않다.
최근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스크는 얼굴의 반 정도를 가리고 있는 데다가 멀리서 작게 찍은 덕분에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겨울은 춥기 때문에 머리와 귀 쪽까지 덮어놓은 상태였기에 더 안심하고 찍었다. 앉아있는 모습을 봤을 때 알 수 있는 정보는 젊은 사람은 아니다는 정도뿐이다. 갑자기 내린 눈 덕분에 찍기 좋은 사진이었다. 만약 저 사람이 없었다면 쓸쓸한 느낌의 겨울을 찍을 수 있었을까? 사람 없이 찍었다면 그저 눈 내리는 겨울을 보여주는 정도에서 더 나가서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사람을 더 크게 찍었다면 아무 곳에 함부로 올리지도 못했을 것이고, 눈 내리는 주변의 느낌 상당 부분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면 사람을 멀리서 찍은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DDP는 사람이 적어 보일 때 찍은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DDP는 그곳 그 자체가 상당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하게 보이는 공간 그 자체만으로도 사진 찍기 나쁘지 않다. 다만, 사람이 많을 때보다는 적어 보일 때 그 공간의 매력이 줄지 않는다. 사진 속에 사람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 DDP 공간의 매력은 오히려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을 찍어야 하는 정확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매우 작은 크기로 찍은 결과가 더 좋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이 너무 작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일단 찍어보자. 찍은 후에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전달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한강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허리에 손을 올린 상태로 멀리 바라보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바다 위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람은 뭘 잡고 있었을까?
해 질 녘 한강을 바라보는 저 사람은 담배를 피고 있지 않았을까?
낚시를 즐기던 사람들. 각각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태양은 언뜻 보기엔 작지만 실제론 매우 크고, 그 빛은 보이는 것 전체에 뿌리고 있지 않던가.
그저 흔하다는 이유 만으로 아름답지 않다, 사진 찍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멀리 있는, 점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을 함께 찍어보자.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찍어야 안심이 될 뿐 문 아니라, 일종의 풍경에 심심한듯한 느낌이 가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을 점처럼 작게 찍으면 심심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조금 더 가까이 가되, 뒷모습이나 고개를 숙인 모습을 기다려보자.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누구든 저곳은 아름다워’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의 끝은 일종의 덤이다.
서로 누구인지 알 수 없더라도 조금 더 가까이 갔을 때 비로소 더 나은 사진이 나올 수도 있다. 바로 고양이를 만났을 때다.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만났을 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 비로소 안심하는 눈빛을 보여준다.
고양이의 얼굴과 눈빛까지 제대로 찍었을 때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고양이는 멀리서 점처럼 작게 찍었을 때 매력이 뚝 떨어진다. 생각하고 보니 사진 찍은 결과, 사진 찍는 순간, 심지어 그들의 마음과 삶 조차도 사람과 반대다.
누누이 다시 말하지만 사진 찍는 그 순간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점처럼 작더라도, 별것 아닌 것 같더라도 그것 조차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흔하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똑같이 돌아오지 않으니 그 순간을 반드시 사진으로 남기시라!
EastRain 2021.08.28
:: 모든 사진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결과입니다.(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제외)
:: 사진에 사용한 Zeiss LOXIA 2.4/85, Zeiss LOXIA 2.4/25는 대여했던 렌즈입니다. 그 외 모든 렌즈는 보인 소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