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MA dp3 Quattro
그동안 dp 시리즈는 광각, 표준, 중망원을 아우를 수 있도록 총 3가지 버전으로 판매됐다. 35mm로 환산했을 때 dp1은 약 28mm, dp2는 약 45mm, dp3는 약 75mm에 해당한다. 시그마가 2014년에 처음 선보인 dp 콰트로 시리즈 중 가장 최근에 선보인 것이 바로 dp3 콰트로다. 이제야 비로소 dp 콰트로 라인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75mm는 누가 손에 들어도 손쉽게 정갈한 프레임을 짤 수 있는 화각이다. 여기에 포베온 센서만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색재현력과 표현력이 더해지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최초의 카메라는 렌즈 교환식 카메라가 아니다. 렌즈와 바디가 하나로 합쳐진 카메라가 주를 이뤘다. 여기에 더해 태초의 카메라에는 미러가 없었다. 이런 사실을 단순히 기술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렌즈 교환이 되지 않고 미러가 없는 카메라는 그 자체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렌즈 교환식 카메라는 바디 한 대로 다양한 렌즈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그 장점이 부메랑처럼 단점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선 렌즈를 갈아 끼우는 사이 셔터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잦아진다. 또한 다양한 렌즈군을 보유하고 있으면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필드의 상황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촬영 스타일과 맞아 떨어지는 렌즈만 골라서 사용하게 된다. 많이 준비해 봤자 짐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렌즈 교환에 특화된 일안반사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피할 수 없다. 특히 핵심 부품인 미러는 양날의 검과 같다. 미러박스 크기만큼 카메라가 커질 수밖에 없고 미러가 올라가고 내려갈 때 생기는 소음이나 충격은 피할 수 없다. 필름 카메라 시대에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P&S(Point&Shot)카메라의 인기가 꾸준했는데 알고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곱씹어보면 왜 dp 시리즈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지켜나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일반 렌즈 교환식 카메라 못지않은 APS-C 사이즈 센서를 탑재하고 해당 센서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고성능 단초점 렌즈를 장착한 것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콰트로 시리즈는 지난 메릴 시리즈와 달리 가로로 길어진 형태다. 디자인과 크기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손에 쥐었을 때 전작보다 확실히 안정감이 좋아졌다. 가로 길이가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DSLR보다 작고 가볍다. 콤팩트 카메라의 미덕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대다수 카메라 브랜드가 각자 개성이 담긴 고성능 콤팩트 카메라를 선보이고 있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고 저마다 다른 특장점이 있지만 그중 가장 개성적인 결과물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dp 시리즈다. 디지털 카메라의 심장이라 불리는 센서 때문이다. 시그마를 제외한 모든 디지털 카메라 제조업체에서 사용하는 센서는 베이어패턴 방식의 단층 센서다. RGB 색상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각각의 픽셀은 한 번에 한 가지색 정보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시그마는 3층 적층 방식 포베온 센서를 적용, 각 층에서 R, G, B를 따로 받아 저장한다. 당연히 보다 많은 색정보를 담을 수 있다. 또한 각 층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정보를 하나의 이미지에 담아내기 때문에 더욱 섬세하고 정교한 결과물을 제공한다.
dp3 콰트로는 포베온 센서를 탑재하고 35mm 환산화각 75mm 중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다. 즉 포베온 센서의 명징한 색감, 생생한 표현력에 얕은 심도와 공간감을 더한 카메라인 것. 따라서 지금까지 나온 dp 시리즈 중 포베온 센서의 매력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기종이다. 실제로 dp3 콰트로를 사용해 보면 dp1과 dp2보다 심도 표현의 폭이 넓어 마치 중형 카메라를 사용한 결과물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워낙 해상력이 좋아 초점 맞은 곳이 면도날처럼 얇고 예리한데다 초점이 맞지 않은 흐려진 구간도 정확하게 분간이 된다. 이는 분명 기존 베이어패턴 방식 카메라에서는 만날 수 없는 표현력이다.
최근 시그마가 새로 선보인 LCD 뷰파인더 LVF-01을 사용하면 dp3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dp 시리즈는 기기 특성상 실내 촬영보다 야외 촬영이 잦은 카메라다. 맑은 날 야외에서 LCD를 보며 촬영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LCD 뷰파인더를 사용하면 아무리 빛이 강한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촬영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단순히 LCD를 보며 촬영할 때 보다 안정적인 자세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피사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접안부에는 디옵터까지 마련되어 있어 사용자를 배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LCD 뷰파인더를 사용하면 카메라 부피가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촬영 스타일, 촬영 피사체에 따라 가려가며 장착하는 것이 좋다.
75mm 화각은 50mm보다 좁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기 쉽다. 초보자라도 쉽게 구도를 잡을 수 있다. 더불어 초점길이가 길어 심도 표현의 재미도 더 크다. 일반적으로 35mm~50mm 사이 렌즈를 스냅 촬영과 일상 사진에 적합한 화각이라고 하지만 사용자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75mm가 더 나을 수 있다. 특히 정갈한 화면 구성을 즐기는 사진가에게 75mm만큼 딱 맞는 화각도 드물다. 손쉽게 주변을 정리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피사체와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dp3 콰트로는 환산 75mm 렌즈인 동시에 간이 접사촬영까지 지원하는 카메라다. 따라서 군더더기 없는 사진을 찍기 좋은 것은 기본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갈 수도 있다. 길가에서 만난 잡초, 특별한 날 즐긴 식사, 공원에 핀 꽃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사물의 민낯과 숨겨진 속살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포베온 센서가 잡아내는 색은 일상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기까지 한다. 미세한 빛의 변화는 기본이고 눈으로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사물의 숨겨진 색상까지 놓치지 않는다. 손으로 만졌을 때 느낄 법한 사물의 질감을 눈으로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이 카메라의 매력이다. dp3 콰트로를 사용하면 미끈할 것 같은 식물의 잎이나 줄기가 까슬까슬한 솜털에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dp3 콰트로를 완벽한 카메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리하면 ISO 800을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추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 떨림 방지 기능이 장착된 것도 아니다. JPG 파일 보다는 RAW파일 촬영을 추천하는데 RAW파일 데이터 크기가 만만치 않아 컴퓨터 사양이 낮으면 사진을 보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이러한 단점과 불편한 점에도 불구하고 dp3 콰트로의 매력은 분명하다. 타사 바디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극한의 리얼리즘이 그것이다. 그리고 리얼리즘의 정점에 도달한 dp3의 이미지는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흔하게 만날 수 없는 사진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dp3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획득한다. 감상자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이미지는 dp 시리즈가 아닌 다른 카메라로 찍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