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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tRain Jul 17. 2015

기계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고칩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전문가 박강우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다

1944년의 일이었다. 3살짜리 딸로부터 “사진은 찍은 뒤 바로 볼 수 없어요?”라는 질문을 받은 에드윈 랜드 박사는 본격적으로 즉석카메라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1947년 세계 최초 상용 즉석카메라인 랜드 카메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카메라 역사적으로는 1923년이 세계 최초 즉석카메라가 개발된 해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카메라와 휴대용 암실을 한데 합쳐놓은 덩치 큰 기계에 불과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즉석 필름을 이용한 시스템은 폴라로이드사에서 개발한 카메라가 최초다. 오죽하면 세상의 모든 즉석카메라를 모두 싸잡아 폴라로이드 카메라라 부르겠는가. 그래서 가끔은 후지필름의 인스탁스 시스템이 안쓰러울 때도 있다. 

1972년 4월, 인류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탄생한다. 바로 SX-70이다. 이 카메라는 접혀있을 때는 정체가 불분명한 직육면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펼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우선 이 놀라운 즉석카메라는 일안반사식 카메라, 즉 SLR이다. 즉 바디 가운데 거울이 있는 카메라가 얇게 접히기도 하고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자동으로 뱉어내는 필름 그 자체가 사진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기존의 즉석 필름은 사진을 찍고 난 후 사용자가 직접 필름을 뽑아내야 했으며 이후 인화지 위의 필름을 떼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1974년까지, 그러니까 SX-70 발매 2년이 지난 시점까지 판매된 대수는 총 70만 대였다. 이는 카메라 역사에 남을 대 히트였다. 

2014년, 그러니까 SX-70이 발매된 이후 40년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SX-70으로 사진을 즐기고 있다. 카메라 자체의 유니크함과 더불어 매력적인 결과물을 뽑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카메라가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 무려 4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고 있는 카메라라는 것이다. 즉 무수히 많은 SX-70이 고장 난 상태고 수리가 필요한 상태인 것이다.


박강우 씨는 바로 그런 심정지 상태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수리한다는 개념보다는 새로운 생명을 심는 것이라 보는 게 맞겠다.

 

카메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기계

혹자는 이제 폴라로이드사에서 즉석카메라와 필름 생산을 접은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맞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에 밀리며 폴라로이드 사는 급격이 사세가 기울었고 2001년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결국 2005 미국 내 피터스 그룹(Petters Group Worldwide)에 매각된다. 당연히 그 이후에는 SX-70에 사용할 수 있는 필름이 단종됐다. 그러나 2008년 임파서블 프로젝트(Impossible Project)라는 새로운 구원자를 만나 다시 부활하게 됐고 2010년부터 필름을 재생산 하고 있다. 즉 아무리 오래된 SX-70이라 하더라도 정상 작동만 한다면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박강우 씨는 그렇게 잊혀질 뻔 했던 카메라를 세상에 다시 불러내 멋진 즉석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다. 그는 “수 없이 많은 SX-70의 파트를 교체하거나 수리를 해봤지만 이 카메라는 1972년에 만들어진 카메라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견고하고 튼튼하다”며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파트는 교체나 수리를 통해 얼마든지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전자부품으로 이루어진 컨트롤 유닛(Control Unit)은 플라스틱이나 금속보다 그 수명이 현저하게 짧다. 생산된 지 40년이 넘은 이 카메라의 유지보수에 있어서 가장 심각했던 점이 바로 컨트롤 유닛이다. 그렇다고 해서 SX-70 수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그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작업에 착수한다. 바로 컨트롤 유닛을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는 “1년여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만들어냈다”며 “SX-70 오리지널 컨트롤 유닛이 안고 있던 단점도 보완했고 당시 기술로는 구현하기 힘들었던 몇 가지 기술을 새롭게 구현하기까지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실로 놀라운 프로젝트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부품을 통해 SX-70의 수리완료율이 100%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잊혀가던 카메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그의 손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어떤 할머니 한 분께서 SX- 70 카메라를 들고 와서 수리를 요청하셨습니다. 카메라 가격보다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었죠. 침수된 후 건조 과정에서 고온 다습한 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애잔한 느낌이 들어서 물어봤습니다. ‘혹시 수리비가 좀 나오더라도 살려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남편의 유품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손님은 수리를 결정하셨고, 수리기간만 약 두 달여가 걸렸습니다. 부분 수리 후 테스트, 부분 수리 후 테스트를 반복해야 했거든요. 그리고 그 두 달은 고장 난 파트와 같은 부품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파트 수리는 동일 사양의 부속 입고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수리가 모두 완료된 카메라를 보는 손님의 눈빛은 마치 살아계시는 할아버지를 보는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수리할 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카메라는 기계이기 이전에 추억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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