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화두 중 하나는 동영상입니다. 필름에서 디지털 센서로 넘어가면서 카메라는 단일 스틸컷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 촬영하게 됐지요. 특히 렌즈 변환이 가능한 디지털 카메라는 동영상 촬영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가 Full HD를 지원하는 것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4K 영상을 지원하는 카메라가 늘고 있습니다. 아마 빠른 시일 내에 4K가 시장을 점령하게 되겠지요.
렌즈 교환식 카메라에 탑재된 동영상 기능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카메라를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가 동영상 기능이 됐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좋은 기능이 하나라도 더 탑재된 카메라가 사용자의 선택을 받게 되죠. 비슷한 가격이라면 더 우수한 동영상 기능이 담긴 카메라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죠. 이해합니다. 당장 카메라를 사고 동영상을 얼마나 찍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압니까. 동영상으로 남길 순간이 생길지.
그런데 정작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는 사람을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몇 번 보기는 했죠. 카메라를 조작하다가 실수로 누르는 걸 가장 많이 봤네요. 아, 이제 막 카메라를 새로 구입해서 이런 저런 기능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버튼을 누르는 경우도 봤습니다. 실제로 사진에 집중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동영상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동영상 촬영을 위해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선택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요.
물론 연속되는 장면을 담는 동영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사진과 동영상은 읽어내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일반적으로 동영상은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더 직설적입니다. 더 설명적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진은 조금 불친절합니다. 단 한순간만 보여주기 때문에 감상자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진이 더 짧지만 주제나 의도를 알아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진이 더 길 수 있습니다.
영상은 싫든 좋든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극대화시켜 작품을 만들죠. 그러나 사진은 다릅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물도 찰나의 순간으로 담아냅니다. 사진 속에 달리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늘의 구름도, 흐르는 강물도, 바람에 흔들리는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지된 순간을 담아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진이 영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의 한 조각, 이미 변해버린 풍경의 어느 순간,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의 얼굴. 사진은 그 순간을 영원히 박제합니다. 그래서 셔터를 누르는 일은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사진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너무 많이 고민하지는 맙시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무겁고도 무거운 일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