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마 ⓒ 30mm F1.4 DC DN
렌즈 교환식 카메라 시장이 DSLR에서 미러리스로 이동하고 있다. 미러박스를 걷어낸 콤펙트하고 가벼운 카메라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이미 많은 여성 유저나 라이트 유저가 미러리스 기종으로 갈아탄 상태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장점은 작고 가벼운 동시에 DSLR급 센서를 탑재해 우수한 화질과 얕은 심도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미러리스 카메라에 번들로 제공되는 렌즈로는 그런 장점을 경험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리개 값이 밝고 화질이 우수한 미러리스용 렌즈 대부분이 기존 DSLR용 렌즈와 별반 차이 나지 않는 크기와 무게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를 커버하는 대구경 렌즈를 APS-C센서 탑재 미러리스에 물렸을 때 목도하게 되는 광경은 기괴하게 보일 정도다. 바디 하단이 바닥으로부터 뜨는 것은 기본이고 마운트에 유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무거워 밸런스도 맞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 카메라 바디의 그립부를 쥐고 움직이는데 APS-C 미러리스에 크고 무거운 렌즈를 달면 행여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APS-C미러리스나 마이크로 포서즈 바디를 위한 적당한 크기와 무게의 대구경 단렌즈는 없는 것일까? 그런 고민으로부터 탄생한 렌즈가 바로 시그마 ⓒ 30mm F1.4 DC DN이다.
시그마는 DSLR이 일반 대중에게 보급되던 시절 APS-C 센서 DSLR을 위한 기막힌 렌즈를 선보인 바 있다. 바로 30mm F1.4 EX DC HSM이 그 주인공. 이 렌즈는 시그마 글로벌 비전 발표 후 ⓐ 30mm F1.4 DC HSM으로 리뉴얼되기도 했다. 보급기는 물론 중급기 유저까지 마운트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시그마 30mm F1.4 렌즈는 한국 시장에서 삼식이라는 애칭까지 얻을 수 있었다.
아시아는 물론 북미 시장과 유럽시장까지 미러리스 카메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시그마가 APS-C 이미지 서클을 커버하는 미러리스용 30mm F1.4를 새롭게 선보였다. 미러리스 시장도 풀프레임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비춰 봤을 때 타이밍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가 가지는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 크고 무거워 거추장스러운 DSLR의 불편함을 벗어나 조금 더 홀가분하게 사진을 즐기고 싶어 하는 APS-C 센서 미러리스 유저의 고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목마른 지점은 바로 조리개 값이 조금 더 밝은 표준 화각대 대구경 단렌즈다.
소니에서 출시한 APS-C용 표준화각 단렌즈는 35mm F1.8과 30mm F3.5 정도다. 30mm F3.5는 접사렌즈로 설계돼 조리개 값이 밝지 않다. 오랜 시간 사진가의 머릿속에 인식된 대표적인 표준 단렌즈의 스펙은 50mm F1.4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소니에는 APS-C 바디용 렌즈 중에 F1.4로 설계된 렌즈가 없다. F1.4렌즈를 찾는다 하더라도 풀프레임용으로 설계된 크고 무거운 35mm F1.4밖에 선택지가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시그마의 ⓒ 30mm F1.4 DC DN가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 렌즈는 조리개 값 F1.4를 달성하고도 무게가 265g 밖에 되지 않는다. 렌즈 크기도 Φ64.8㎜ × 73.3㎜로 부담스럽지 않다. 시그마의 글로벌 비전 시리즈 중 컨템퍼러리 라인답게 우수한 휴대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 그렇다고 해서 화질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하지 말자. 7군 9매 구성 중 비구면 렌즈 2매와 고굴절, 고분산 유리를 사용해 글로벌 비전 시리즈의 아트 라인에 필적하는 화질을 기대할 수 있다. 그야말로 경박단소와 고화질을 절묘하게 양립한 렌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종종 여러 방해 요소 때문에 즐거움이 반감되고는 한다. 날씨처럼 자연적인 현상 때문에 아예 사진을 찍지 못하거나 사진 찍는 순간이 괴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뿐더러 그 순간이 지나가면 해결되는 일이다. 그러나 촬영 장비로 인한 제약이나 단점은 조금 다른 문제다. 장비 무게가 무거우면 오랜 시간 두 발로 돌아다니며 촬영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조리개가 어두우면 사진이 흔들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ISO를 올려야 하거나 삼각대 같은 부가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것들을 인내하고 극복하곤 하지만 즐겁고 짜릿해야 할 순간이 고행의 시간이 되어버리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대안이나 해결 방법이 있다면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는 게 즐겁게 사진을 즐기는 길일 것이다. 소니가 대형 센서 탑재 미러리스 시장을 견인하면서 많은 사용자들이 가벼운 렌즈 교환 시스템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니가 제시하고 있는 대구경 단렌즈 혹은 줌렌즈들은 '미러리스(특히 APS-C 바디)가 지향하는 지점과 맞아떨어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고화소에 대응하는 해상력에만 총력을 기울일 뿐이다. 광학 메이커가 '화질 지상주의'에 천착하는 것을 두고 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편의성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으로 탄생한 결과물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존의 물리학을 뒤엎는 전혀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최상의 화질과 경량화를 양립한 렌즈가 나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조금씩 양보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시그마의 경우 화질을 1도 포기하지 않는 경우 아트 시리즈로 개발한다. 무게가 무거워지고 원가가 상승하더라도 어떤 이유로도 화질을 떨어트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무겁고 크다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우수한 화질을 얻고자 하는 사진가들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대중적이고 휴대성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야 할 때에는 컨템퍼러리 시리즈로 기획한다. 최고 성능은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는 동시에 가벼운 휴대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시그마는 ⓒ 30mm F1.4 DC DN을 개발하면서 뒤처지지 않는 화질과 경량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APS-C 미러리스 바디 사용자의 성향을 실용적인 아마추어 유저로 파악한 결과다.
대형 인화를 필요로 한다거나 결과물을 통해 수익을 얻는 프로가 아니라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아마추어. 그런 유저라면 ⓒ 30mm F1.4 DC DN는 분명 차고 넘치는 렌즈다.
두 발로 걸으며 소위 말하는 '발 줌'하기 좋은 표준 화각, 바디와 마운트 했을 때 언제 어디에나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와 무게, APS-C 센서의 얕은 심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F1.4의 밝은 조리개 값, 웹으로 봤을 때 충분히 선명한 화질,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까지. 조목조목 뜯어보면 사진 찍는 즐거움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를 최대한 없애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근래 보기 드문 미러리스 전용 렌즈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혹시 친구 따라 덩달아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했는데 사진에 딱히 관심이 없어 휴대폰 카메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특별한 날에만 꺼내 쓰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시그마 ⓒ 30mm F1.4 DC DN으로 사진 찍는 즐거움을 느껴보자. 큰 맘먹고 6개월 할부로 지른 카메라의 진정한 가치, 나도 몰랐던 내 카메라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렌즈 구성 7군 9매
최소 조리개 F16
필터 사이즈 φ52㎜
화각(DC) 50.7°
최단 촬영거리 30cm
크기(지름X 길이) Φ64.8㎜ × 73.3㎜
조리개 날 수 9(원형 조리개)
최대 확대비율 1:7
무게 265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