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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tRain Jun 25. 2015

'보케'가 뭔가요?

Q: 이직 전에 잠깐 시간이 생겨 서랍 속에 잠자고 있던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그동안 일할 시간이 모자라다는 핑계로 카메라를 사서 얼마 찍지도 못했거든요. 장비를 들인지는 꽤 됐는데 사실은 초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야 시간이 나서 사진 동호회도 들락날락거리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궁금한 단어가 하나 생겼습니다. 보케가 뭔가요? 많이들 쓰는 단어 같은데 어떤 사람은 일본말이기 때문에 빛망울로 고쳐 쓰라네요. 보케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단어는 정말 쓰면 안 되는 것인지 궁긍합니다.

    

A: 요즘 들어 부쩍 ‘보케’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죠. 사실 오래 전부터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단어지만 최근 들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기 저기서 눈에 띄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 카메라 브랜드에서 홍보를 목적으로 쓰기 때문인데요. 과거 ‘아웃 포커스’라는 국적 불명의 용어가 온라인 제품 설명 페이지에 홍보용으로 남발되던 것을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홍보 문장에서 아웃 포커스를 슬그머니 빼 내고 그 자리에 보케를 가져다 놓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웃 포커스라는 낮 뜨거운 엉터리 용어가 아니라는 것 정도겠네요.


보케는 쉽게  설명드리자면 심도 표현에 의해 흐려진 부분에서 나타나는 각종 현상을 뭉뚱그려 말하는 용어입니다. 우선 말씀하신 빛망울도 보케의 일종입니다. 흐려진 배경에 위치한 광원이 빛망울로 표현되는 것이죠. 그러나 보케는 빛망울보다 상위 개념으로 이해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예를 들어 꼭 배경에 광원이 없더라도 특정 형태로 배경이 뭉개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모든 현상을 보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초점이 나간 배경에 나뭇잎이 있을 경우에도 동그란 모양으로 망울이 지고 잔디 같은 경우에는 길쭉한 모양으로 특정 형태를 띠며 흐려집니다. 또한 올드 렌즈나 수차 보정이 덜된 렌즈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 한 독특한 뒷흐림이 나타나는데 이 또한 보케입니다. 같은 화각, 같은 F값이라고 해도 렌즈가 어떻게 설계됐는 지에 따라 제각각 다른 보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후지필름은 56mm F1.2 렌즈를 두 종으로 나눠 생산합니다. XF 56mm F 1.2 R과 XF56mm F1.2 R APD가 그것인데 둘은 기본적으로 같은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보케 표현이 완전히 다릅니다. XF56mm F1.2 R APD는 렌즈 내에 아포다이제이션 필터를 내장해 같은 조건으로 촬영을 해도 배경 흐림이 더욱 뭉개지고 보케도 형태를 나타내기 보다는 경계가 없이 흐릿해집니다.


보케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시작된 것은 맞습니다. 暈け 혹은 ボケ라고 씁니다. 이 단어를 단순 해석하면 흐려지다 쯤이 됩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사진에서 보케라는 단어는 다양한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서구권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bokeh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지요. 외국 사진 커뮤니티를 훑어보면 bokeh라는 단어를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김치라는 우리 음식을 나타내는 단어는 외국 어느 곳에서든 김치라고 불립니다. 마찬가지로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보케라는 용어를 정립하고 연구한 나라가 일본이라면 그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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