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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Nov 15. 2020

토니 타키타니

심리


토니 타키타니


고요한 밤하늘이 내려앉은 도심 속 벤치에서 토니는 에이코를 기다린다. 도착한 에이코가 앉기도 전에 토니는 횡설수설 말을 이어간다. 지금껏 자기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열다섯 살 차이가 나고 외향적으로도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필사의 힘을 다해 전한다. 한 번도 의심해 본적 없는 토니의 삶은 에이코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마치 초승달의 표면처럼 말이다.


그 흔한 무미건조한 '사랑해'라는 말 조차 없다.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지 고독을 잊게 해주는 시기에 불과하다. 부작용이라면 짙은 향을 남겨 언제까지고 공복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고독하다. 적정 시기에 이르면 잔인하고 냉담한 권태가 찾아온다. 권태도 영원하지는 않다. 과정은 반복된다. 이미 알게 된 감정을 잊지 못하고 떠도는 나그네의 삶만이 남아있다.


이치카와 준 감독님은 영화에 더 많은 의미와 디테일을 더 했겠지만 나는 유독 이 부분이 좋았다. 비록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준 사람과 사별해 본 경험은 없지만 나도 토니와 같은 뒷모습을 했을 당시가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 시작했지만 유통기한이 끝날 때 즘에는 최악의 인연이 되어 있어 지만 말이다.


가끔 아니 어쩌면 무기력한 감정이 스민다. 권태로움은 내가 부르지 않아도 자주 내 방문을 열고 멋대로 들어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선택해야 할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마음껏 권태로워할 건지 권태로움을 이겨내 볼 건지. 나는 전자 쪽을 택하는 편이다. 순간 가지는 감정에 더 깊고 어두운 곳까지 계속 가본다. 비슷한 무드의 영화를 찾고 본다거나 책을 읽거나 혼자 걸으며 나에게는 사색이나 남들에게는 망상 비슷한걸 한다. 그러다 보면 신체적으로 도무지 일어날 수 없을 지경까지 가는데 나는 그런 상태가 썩 괜찮다. 그럴 때면 토니의 얼굴이 생각난다. 보관해 두던 물건들을 태우던 토니의 표정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해 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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