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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생 Oct 23. 2021

고양이처럼 사람도 공부할 수 있어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사람 공부에서 비롯된다



내 브런치를 보면 알겠지만, 난 대부분 '인간'에 대한 글을 썼다.



인간에 대해 분석하고,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지어 특징을 서술하는 행동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서 사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처음엔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브런치 독자들은 너무나도 친절했고, 내 글을 좋아해 줬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이 플랫폼에 글을 쓰자고 결심한 것이 참 다행이라고 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규정짓는 행동을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자기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이 부분을 '잘'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사람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를 지난번에도 쓰긴 했지만, (내가 살인자를 이해하는 이유?) 더 설득력 있는, 나아가 누군가에게 사람 공부의 필요성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글을 다시 써보려고 한다. 나의 행동과 생각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을 잘 판단할 수 있는 무기를 갖추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수적이진 않다. 하지만, 갖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린 고양이를 잘 키우기 위해

'고양이 공부'를 한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훌륭한 집사들은 책으로든 유튜브로든 고양이에 대해 공부한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건강을 지키는 음식을 주고, 싫어하는 행동은 자제한다.



근데 재밌는 건, 같은 종의 고양이라도 저마다 성격이 있다. 어떤 고양이는 츄르를 싫어하고 참치를 좋아한다. 또 독립적인 고양이, 굉장히 사람에 대한 애착이 많은 고양이 등 녀석들의 성격 유형도 정말 사람 못지않게 많은 것 같다.



근데 만약, 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상당히 독특한 성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양이에 대한 공부가 쓸모없어질까? 실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고양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덜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좋아할 뿐이지 기본적인 고양이 양육법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만에 하나 크게 벗어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기준을 알면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상황을 상상해보자.


A는 10년째 집에서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새끼 고양이 임시 보호 경험도 여러 차례 있다.

B는 고양이는커녕 그 어떤 동물을 돌봐본 경험이 없다.



이 둘이 함께 길을 걷던 도중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했다.


B는 귀여운 고양이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박수를 치며 시선을 끌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간다.

고양이는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다 결국 도망간다. 그리고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A : "그렇게 다가가니까 도망가지, 처음엔 멀리서 보다가 고양이가 경계 태도 보이면 그냥 지나가 주는 거야"


B : "고양이들도 다 성격이 다르다던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 고양이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을 수 있잖아"


A : "고양이들 습성이 원래 그래"


B : "원래 그런 게 어딨어? 네가 저 고양이 주인도 아닌데 어떻게 쟤 마음을 알고 함부로 판단해?"






A와 B 중에 고양이를 배려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대부분 A로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B의 행동이 고양이를 배려한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B의 말을 다시 보자. 고양이 각자의 개성을 생각한 B의 말이 완전히 틀린가? 그건 또 아니다. 정말로 어떤 고양이들은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애교를 떨고 먼저 뛰어서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매우 드물게 말이다.



난 이 예시에서 고양이를 사람으로 바꿔 생각하는 것이 실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고양이보단 더 복잡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고등한 생명이긴 하나, 우리도 고양이와 같은 동물일 뿐이다. 평균적인 고양이에 대한 지식을 알아야 내 옆에 있는 고양이를 대하는 것이 훨씬 편해지듯, 사람에 대한 평균을 알면 사람을 대하는 것이 편해진다.



난 남성과 대화할 때 그들이 들고 온 정보를 인정해주고, 고맙다고 인사해준다. 남성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대화할 때는 무성의한 어투는 쓰지 않는다. 충분한 공감과 친절로 그들의 감정을 항상 배려한다. 대화와 감정은 여성에게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고양이 설명서에 나온 것과 100% 행동이 일치하는 고양이는 오히려 매우 드물 것이다. 모든 고양이가 그 설명서와 조금씩 다른 차이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설명서로부터 고양이라는 생물의 중심점을 잡을 수 있다. 중심점이 잡히면, 어떤 고양이를 만나더라도 보다 쉽게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해 서술하는 책은 고양이 설명서보단 종류가 많고, 다양하지만 어쨌든 충분히 공부한다면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내가 인간에 대해 공부하는 핵심적인 이유이다.


(써놓고 보니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비슷한 것 같다)






'인간을 판단하지 말자'는 것은 그저 낭만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안 좋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며 배운다. 누군가를 함부로, 특히 안 좋게 판단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 화살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리고 인간 그대로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난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재산을 관리해줄 사람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판단 없이 아무에게나 내 재산을 맡길 수 있는지 말이다.



예시가 극단적인 감이 있긴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그 어떤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워서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당신이 소개팅 자리에 나갔는데, 상대방이 머리를 이틀 안 감고 나오고 아무렇지 않게 트림을 꺼억꺼억 하는 사람이라면 다음번 만남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 같이 출장을 갈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게 됐는데, 평소 나와 마찰이 잦던 까탈스러운 동료와 가겠는가? 아니면 매일 맛있는 것도 잘 나눠주는 친절한 동료와 가겠는가?


- 여행 기간 중 우리 집 강아지를 맡겨야 하는데, 한 친구가 자신만 믿으라며 강아지를 돌봐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친구는 공감능력도 부족하고 동물과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맡길 수 있겠는가?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뻔해 보이는 만큼, 우리는 일상에서 사람에 대한 판단을 일삼는다. 다만, 그 판단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도록 주의할 뿐이다. 난 그 어떤 누구라도, 사회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평생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개개인을 존중해주자' 정말 낭만적인 얘기이지만, 난 이 두 가지가 양립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판단 없이 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B가 호의라고 생각한 행동이 고양이가 정말 싫어하는 행동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존중만 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나'와 상관없는 상황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배려할 때 잘 생각해보면 결국 '상대방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 '어떤 것을 원할지'를 판단하고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그 판단 수준이 더 정교할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더 디테일해진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과 더 수월하게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만큼 사람과의 유대 형성은 꼭 필요하다.

유대를 잘 형성하기 위해선 상대방을 잘 배려해야 한다.

배려를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판단이 정교할수록, 더 섬세한 배려가 가능해진다.



누구나 매일 같이 하는 사람에 대한 판단,

'하지 말자'고 외치는 것보단 더 잘하는 쪽으로 계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든 동물의 기본값이다



모든 동물은 '나'를 우선시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1순위로 생각하게 되면, 자기 자신의 생존은 정말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일단 자기 자신을 가장 1순위로 생각한다. 누군가를 돕고, 나누고, 배려하는 것 또한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긴 하지만, 일단 먼저 나의 생존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과하게 들어간 배려 때문에, 가끔 사고가 나기도 한다. '사람들도 나처럼 다 커피에 시럽을 넣겠지'라는 생각으로 호쾌하게 팀원들을 위해 시럽을 듬뿍 넣은 커피를 사 간다면,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나랑 안 맞는 커피를 먹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고, 커피를 사 온 사람도 그 석연찮은 반응을 보고 기분이 안 좋아질 것이다.



소위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기준을 자기 자신으로 놓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겠다.' 혹은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는 엄청 좋아할 수 있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예 내 생각 범주에도 없는, 그런 상대방의 행동을 보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배려나 공감의 태도는 싹 사라지고,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행동을 주변 사람에게 느끼면 결국 싸움으로까지 번지곤 한다.



'난 네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생각을 시발점으로 싸움이 번져나가는 것, 남녀 사이에 너무나도 잦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요즘 같은 평등 추구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특성이 다르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만큼 서로의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정말 많이 난다. 여성들은 남성이 자기 몸 버려서까지 무리한 일에 도전하려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들은 여성이 호텔방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한올 때문에 분노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시대가 빠르게 진보하더라도 우리가 그 남자, 그 여자의 생각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하다.



지난 수백만 년간의 긴 인류 역사 동안 인류는 성별에 따라 역할이 분리되어왔다. 낭만과 평등이 없는 역할 구분이 인류 역사 기간 99 % 동안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우린 그런 그들의 후손이다. 아직까지 우리 DNA는 남성과 여성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래서 남녀관계에서는 더욱더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사람을 판단한다면, 이성의 행동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내 기준밖에 있는 행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공부해야 한다. 고양이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고양이만큼 혹은 그보다 더 소중한 나의 연인, 배우자와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선 그 나와 다른 성별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꼭 애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이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에서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인간에 대해 공부할수록 어떻게 공부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서로의 특징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마치며



난 현재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직종보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많다. 따지고 보면 내 일의 거의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결정의 집합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판단력과 결정력을 기르기 위해 끊임 없이 공부한다.



'인생은 배팅의 연속이다'라는 말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원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고려 가능한 변수가 성별밖에 없다면, 난 여성을 뽑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대화에 능숙하기도 하고, 남녀 모두 처음 보는 남성에겐 다소 경계하는 태도를 갖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여러 판단 근거들이 있지만, 변수가 성별 하나라면 여성을 뽑을 것이다. 서비스 업무를 더 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채용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변수들과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고용인이 피고용인들 한 사람 한 사람 인생 전부를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모든 방면을 일일이 검증할 시간이 없으니 몇 가지 장치를 사용해 사람을 재빠르게 판단한다. 결국 사람을 뽑는 것도 '우리 회사에 더 이득을 줄 확률이 높은 직원'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높은 '확률'을 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들어맞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검증 절차가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좋은 직원만으로 구성된 회사가 완성될 것이다.



높은 확률 쪽의 베팅을 꾸준히 지속하면 결국 이득을 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확률을 자세히 판단할 수 있는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간에 대해 공부하면, 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될 확률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가능성을 보고 배팅을 할 수 있게 된다. 갑작스럽게 내 인생에 찾아오는 행운은 결코 무작위 한 것이 아니다. 그 행운이 생긴 것 또한 누군가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글에 담긴 내용들이 당신의 행복한 앞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길 바라는 마음으로 끝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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