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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생 Sep 28. 2021

내가 살인자를 이해하는 이유?


보통 심리학, 뇌과학 등의 학문으로 사람을 분석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보인다. 과거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착 책 몇 권으로, 나에 대해 판단을 한다고?'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과거 나는 나 자신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고결한 존재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많은 공부를 통해 알면 알 수록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한 원인으로 인해 행동이 유발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인간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는 항상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고, 나와 다른 가치관, 행동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그저 기피하기만 했다. 간혹 정 반대에 놓여있다고 생각한 사람과 강제로 같은 팀이 된 상황에 처했을 땐, 갈등이 생겼거나 혹은 최대한 그 사람과 접점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우리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싸우거나 혹은 회피한다. 도저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융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정말 이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상대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악역이 그렇다. 스토리 막판에 갑자기 악역의 어린 시절 회상이 나오면서 애정 결핍, 사회로 부터 받은 핍박 등의 가슴 아픈 이유가 나오며 시청자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야기한다. 그렇게 우리는 악역이 나쁜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알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절절한 이유가 있더라도 악당의 행동을 용서할 순 없다. 그러나 그 인물의 행동에 대해 이해한 우리는 '그 사람이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좋은 멘토를 만났다면' 등의 생각을 갖게 된다.






인간의 평균에 대해 안다는 것



이처럼 우리는 아무리 내가 할 수 없었던 상대일 지라도, 그런 말과 행동을 만든 이유에 대해 알게 되면 더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진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소해주며 관계의 발전을 만들 수도 있고, 갈등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요소를 더 조심할 수 있게 되어 대화를 지속하더라도 싸움이 벌어지진 않는다.



현재 난 공부를 통해, '인간의 평균'에 대해 알게 됐다. 인간은 1000명이 있으면 1000가지 성격이 있다고 할 정도로 각자의 고유한 특성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평균'이라는 기준이 잡히자 나와 다르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듣지 않더라도 말이다.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독특한 사람이라도 인간의 특색 범주 중심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의 범주가 늘어났고, 과거엔 해결되지 않을 갈등 상황이 훨씬 쉽게 해결이 됐다.








물론 나도 나만의 특색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제 3자의 시선으로 인간 특색 평균을 생각하며 사람을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해졌다. 나 자신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는 행동 중 좋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에 대해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유발 인자는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며 원인을 찾는다. 그렇게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도 쉬워진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람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평생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사람에 대해 분석하고 판단한다'고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나조차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겐 아직도 썩 좋은 감정을 못 갖는다. 언제나 평가받는 것은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공개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선 '심리학', '사람을 판단하는 법'같은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스스로 항상 판단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 중에서 상대방에 대한 판단력이 떨어졌던 인간은 재물을 빼앗기거나 죽임을 당해 DNA를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에는 '뛰어난 판단가'들의 후손들만이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얼굴, 옷, 냄새, 말투 등을 본능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나에게 이득이 될지 안 될지를 판단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A는 며칠 안 씻은 것처럼 머리가 떡져있고 얼굴과 온몸엔 흙과 먼지 투성이다. 옷도 누더기처럼 해져있고,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B는 방금 다린 것 같은 깔끔한 셔츠와 바지를 입고 정돈된 헤어스타일, 깨끗한 피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주위에선 향긋한 냄새가 난다.



당신은 본능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끌리고, 어떤 사람을 기피할 것 같은가?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A보단 B에게 이끌린다. 



"사실 B는 사기꾼이고, A는 마음씨가 따뜻한 좋은 사람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냐?"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맞을 수도 있다. 단, 매우 낮은 확률로 말이다.






우리는 한 가지를 '선택'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우린 나에게 보다 높은 확률로 이득이 될 수 있는 선택지를 '판단'해서 최종적으로 하나를 고른다. A와 B 중 식사 파트너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B를 선택할 것이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실험을 꼭 하지 않더라도 압도적으로 B를 선택의 비율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고결함을 침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엔 분명히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당신이 사업을 한다면 함께 일을 할 사람을 선택해야 하고, 학생이라도 조별과제를 함께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조직원 내에서 가까이 할 사람과 멀리할 사람을 판단해서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앞으로 사회생활을 지속할 것이라면, 평생 사람을 평가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린 오로지 자신에게 이득이 될 사람들을 자신만의 잣대로 평가해서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삶 속에서 평등을 잘 실현하지 않는다.



나는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이왕 판단할 거면 더 좋은 기준을 갖고 판단하자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람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 사람의 시각에선 상대방을 판단할 때 나에게 도움 될 확률을 0 또는 100으로 밖에 판단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상대방이 나에게 도움이 될 확률을 0과 100의 그 중간 확률까지 세세하게 계산이 가능해진다. 즉, 인간에 대한 판단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내가 살인자를 이해하려 했던 진짜 이유?




나는 제목에서 '살인자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는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그저 살인을 하게 되는 과정을 이해했을 뿐이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난 아직 그 정도의 성인까지는 아니다.



난 살인자들이 왜 사람을 죽이게 되는지, 진화심리학 및 뇌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며 앞으로 내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거리를 만들 요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 살해 까진 아니더라도, 누군가로 부터 피해를 받아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가 최대한 없도록 태도를 교정했다. 



한 가지 예시를 들면, 나는 정말 별로인 서비스를 받은 업장에 대해서 안 좋은 후기를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잠재적으로 내 인생을 망쳐놓을 수 있는 아주 큰 적을 하나 만드는 행위이다. 이게 습관인 사람은 그 행위가 누적될수록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된다.



그리고 한 편으론, 사회적으로 그들의 살인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봤다. 단순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악마라고 치부해서 나와 같은 사람임을 부정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 사회에선 영원히 살인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저지르게 됐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야 오히려 살인율은 더 떨어지고 사회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진화심리학' 그리고 '연애'에 대한 글을 발행하려 했는데, 일단 접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민감한 연애에 관련한 글을 쓰다 보니 계속 독자들이 느낄 거부감이 걱정됐다. 그래서 먼저, 내가 왜 심리학에 대해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하며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담은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어떤 책은 핵심이 되는 노하우를 마지막 부분 20 %에 담아놓고, 앞에 70 % 이상을 동기부여에 쏟는다. 처음엔 이런 책의 구조가 답답했는데, 지금은 점차 그 70 %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동기부여가 잘 되면, 이후에 나오는 지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다. 마음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냅다 지식만 주입하면 우리는 아무리 좋은 정보가 많더라도 5 % 도 채 습득하지 못하게 된다.



이 글이 좋은 동기부여가 돼서, 앞으로 연재할 '사람'에 대한 칼럼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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