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에서 살아남기 ④
다음은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순직 해병 특검에 관해 적어보고자 한다.
해병 특검 사무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집과 매우 가깝다. 농담이 아니라 아크로비스타에서 누우면 코 닿을 거리다. 이 때문인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종종 특검 사무실 앞까지 와서 반대 시위를 벌이고 한다. 법원과도 길만 건너면 되기 때문에, 나는 세 특검 중 이곳에 배치받았다. 내란 특검이 있는 서울고등검찰청이나 김건희 특검이 있는 광화문 KT빌딩보다는 시설이 열악했다.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는 KT 빌딩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기자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빌딩 앞은 바로 도로기 때문에 주요 관계자 소환에 대비해 뻗칠 공간은 부족했고, 그 덕에 복도에 옹기종기 앉아 사람들을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특검 측에서 자제해 달라는 말이 나와 기자들은 회의실 안쪽에만 있는 실정이다.
사실 해병 특검에 대한 기자들의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공수처에서 이미 상당량의 조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관 명예훼손, 항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박정훈 대령에 대한 1심이 무죄로 결론 났기 때문에, 특검으로 이첩되면 항소도 높은 확률로 취하될 것으로 보였다. 다른 두 특검에 비해 더 나올 부분이 많아 보이지 않았고, 사실상 사건 재검토에 그치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주요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은 매섭게 이뤄졌다. 지난 10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국방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작했고, 이튿날 바로 아크로비스타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세 특검 중 윤 전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게 해병 특검이 최초였다.
'격노설 특검'이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지금 나오고 있는 언론 기사들만 놓고 봤을 때, 해병 특검에서 가장 진척이 빠른 수사 부위는 'VIP 격노설'이 아닐까 한다. VIP 격노설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난 2023년 채수근 해병 순직 사건 수사결과를 보고받은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고, 이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박 대령의 진술서에 따르면 김 전 사령관은 지시가 뒤바뀐 사유를 묻는 박 대령에게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전 사령관은 이를 부인해 왔다. 특검은 당시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해 순차적으로 소환조사를 진행했는데, 그때마다 언론은 'A 씨가 격노설 인정 진술했다' 'B 씨도 격노설 인정 진술했다' 'C 씨도 세 번째로 격노설 인정 진술했다'라는 단독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물론 확인 안 되는 진술을 능력껏 확인해 기사화한 건 대단한 일이지만,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냈다, 안 냈다'로 포커싱 되는 것에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내서 채 해병이 숨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윤 전 대통령의 이런 행동 때문에 수사외압이 가해졌다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의 보도행태가 채 해병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병 특검은 다음 주에도 줄줄이 관계자 소환을 예고했다. 물론 VIP 격노설 외에도 구명로비 의혹,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과정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남은 특검 기간 동안 어떻게 진행될지 잘 지켜보고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