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삿거리란 무엇일까?

어쩌다 기자생활 ④

by 꽁냥이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9일 오후 03_06_19.png 발제 스트레스엔 끝이 없다

"기사 몇 개나 쓰세요?"

입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옆에 앉아있던 선배에게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진 기억이 난다. 기사 쓰는 게 일이니까 당연히 수도 없이 많은 기사를 쓰셨을 테다. 하지만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과연 기사로 쓸만한 '거리'가 없으면 어떡하느냔 것이었다. 5천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매일매일 일이 없기도 쉽지 않겠지만, 정말 평화로운 날도 있지 않을까? 그런 날도 어쨌든 뉴스를 하긴 해야 할 텐데, '기삿거리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유치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런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한 내가 우스웠다.


일을 좀 하다 보니 정말 특별한 일이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 항상 들려오는 말들. "좀 찾아봐" "좀 알아봐" 심하면 "뭐라도 가져와"까지. 이렇게 발제 스트레스가 이어지다 보면 내가 뭔가 사고를 쳐서라도 기삿거리를 만들어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 내용이나 기사가 될 순 없다. 결국 뉴스에 나가는 건 보도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종종 댓글을 읽다 보면 '요즘 일이 없긴 한가보다. 이런 것도 기사 쓰는 거 보니'라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일이 정말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마다 기사에 두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얘기'가 된다

기자 세계에는 많은 은어가 있지만, '얘기된다'라는 말만큼 직관적인 은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조금 쉽게 풀어쓰면 "재밌네"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얘기되는 일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내가 가장 오래 근무한 사회부 사건팀을 예로 들어보면 새로운 사건, 사고가 기삿거리가 된다. 고양이가 한강에 빠져있으면 기사가 안될 텐데, 고양이가 한강 위를 걸어 다녀서 기사가 된다. 그런 일들을 찾기 위해 취재원을 사귀고, 밤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하루 종일 거리를 걸어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건이 손을 들고 '여기 있어요!' 하지 않는 노릇이다. 가까스로 뭐라도 하나 건졌나 싶은데 단순한 사건, 수위 말해 '짜치는' 사건은 바로 킬이다. 피해 규모가 크거나, 수법이 기상천외하거나,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명 피해가 없으면 "그것 참 다행이다" 보다는 "얘기 안되네, 두자"라고 말하는 자신을 보며 사이코패스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게 직업이니 어쩔 수 없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9일 오후 11_34_35.png 보고하러 가야 하는데

“기자님, 이거 진짜 특종이에요”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마와리를 돌던 수습시절, 2시간마다 취재한 내용을 선배에게 보고해야 했다. 보고 시간이 다가왔고, 마음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장되는 시간이 흐르던 사이, 한 민원인이 수사관으로 보이는 경찰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봤다. 민원인은 서류뭉치를 한 움큼 들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민원인에게 무슨 일로 경찰서에 왔는지 물었고, 민원인은 여기서 말하기 곤란하니 명함으로 연락 달라고 하였다. 안 그래도 보고거리가 없었는데 잘됐구나 싶었고, 어린 마음에 큰 특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선배에게 보고를 한 뒤 며칠 뒤 민원인과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민원인은 큰 서류봉투를 꺼냈다. 서류에는 각종 한자가 한가득이었다.


"기자님 이거 봐요. 이게 우리 문중이 있는데 이 놈이 사기를 친 거야. 이 문서 발급해 준 구청 놈들도 다 한통속이에요!"

"여기 서류 다 있고, 이거랑 저희 고향 찾아가서 촬영하고 하면 딱이에요. 이거 특종이야 특종"


얘기가 점점 길어졌다.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 갔다. 딱 봐도 '얘기'가 안되는데, 이 민원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참 막막했다. 그래도 나를 믿고 연락처도 주고, 이렇게 시간 내서 말을 해주고 있는 것일 텐데. 또다시 보고시간이 다가왔고, 양해를 구한 뒤 선배께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했다.


"접어라, 나와"


선배는 단호하게 아이템을 접으라고 했다. 나중에 다시 통화했을 땐 그런 것도 잘 끊어내는 게 기자의 능력이라고 말헀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민원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에게 털어놓는 태도와 말투에서 굉장히 큰 일을 당했다는 걸 느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나에게 시간을 내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적인 일이 기사가 될 순 없는 일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얘기'가 되는 기삿거리이기 때문이다.


하나 확실한 건 기사가 된다, 안된다를 정의 내리는 정확한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기자마다 다르고, 언론사 특징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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