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기자생활 ③
전달자라는 한계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은 전달자다. 전달자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 따라 독자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국어시간에 배운 이 육하원칙을 제대로 지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우리의 취재대상은 정보를 쉽게 주지 않는다. '아니 뭐 이 정도도 안 알려주나?' 싶을 만큼 모든 걸 숨기고 감추려 한다. 게다가 물어오는 사람이 피를 나눈 인척도 아니고 옆 집에 살던 영희나 철수 같은 친구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기자라니. 더더욱 정보를 줄 리가 없다.
반면 좋은 것들은 다 공개되어 있다. 나서서 홍보를 해야 하는 것들은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나쁜 것들은 저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기자들은 그런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쉴 새 없는 전화는 기본이다. 집 앞에 찾아도 가고, 안 나오면 앞에서 계속 뻗치기도 한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조그마한 정보라도 나올까 검색을 해본다. 하지만 갈수록 강화되는 보안정책에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기자야, 사실만 말해라"
오늘도 기사 댓글창이 핫하다. 정치적 의견이 갈리는 기사일수록, 사회의 분노를 자아내는 기사일수록 댓글수는 많아진다. 문제는 건전한 댓글보다 기자를 향한 인신공격성 댓글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클린봇'이라는 필터링 기술을 적용하고 있지만, 모두를 걸러내기엔 한계가 있는 듯하다. "그러고도 기자냐" "기자는 사실대로 써야 하는 거 아님" "요즘 기자들은 시험도 안 보나 봐" (매우 매우 순화한 표현들이다) 이런 댓글을 몇 개만 봐도 보통 나는 멘털이 날아간다. 정확하게, 사실대로 쓰고 싶지 않은 기자들은 없다. 하지만 기자도 단순 회사원일 뿐이다. 수사권이 있는 경찰이나 검찰 같은 기관들과 달리, 기자들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 기자들이 모든 걸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시청자와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해 준다면 부담이 덜어질 것 같다.
진실을 찾는다는 어려움
지난 2025년 2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임원진들에 대한 2심 선고가 내려졌다. 결과는 1심과 같은 무죄가 나왔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이슈로 번지진 않았다. 이날은 내가 이 기사를 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심 판결문을 찾아보니 판결문이 1천 페이지가 넘었고, 2015년부터 불거졌던 일이다 보니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방대하게 얽힌 일들, 회계, 배임 등의 용어를 모두 아는 건 불가능했고 이거를 또 2분 남짓한 원고로 옮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법원 출입 시절, 법관분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같은 민사, 형사 사건이더라도 종류가 다다르고, 또 형사 사건 안에서 전문분야를 다룰 때도 많다. 특히 코인이나 의약 관련 사건들 재판을 들어가면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간혹 증인들이 외국인일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통역사가 붙지만 통역이 온전치 못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찾아 판단해야 하는 법관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그렇게 법관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쳐 내린 판결을 나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정도로 쉽게 풀어써야 했다. 사건의 당사자도, 사건의 책임을 판단 짓는 사람도 아닌 제삼자인 기자는 참 부담이 크다. 취재하고 공부할 시간은 한정돼 있고, 일단 그날그날 기사를 막느라 정신이 없다. 한정된 지식으로 기사를 쓰다 보면 오보 가능성이 높아지고, 숨 막히는 마감시간과 속도경쟁은 또 다른 압박감을 더한다. '진실을 찾겠다'라는 초심을 견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하루하루 느끼는 요즘이다.
격려의 한 마디
대학생 시절, 한 공기업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도중 나는 '정보공개청구'라는 제도를 사용했다. 하지만 나에게 '공개할 수 없는 정보'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음만은 소송까지 끌고 가서라도 납득할 만한 답변을 받고 싶었지만, 개인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어느 한 기관 앞에서 개인은 약자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당시 이 일을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고, 한 기자분께서 이를 공론화 해주셨다. 기자분의 질의에 그 공기업은 입을 열었고, 나는 기사를 통해 그 기업의 입장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과연 전화를 했다면, 그 공기업은 제대로 된 답변을 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힘없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공론화시킬 수 있는 힘. 그게 이 직업의 존재 가치가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기자를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이 직업을 갖기 전에 기자라는 사람과 직접 대면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만약 길을 가다 기자가 말을 걸어온다면, 너무 뿌리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귀중한 한 마디가 그 기자에게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