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는 언제나 앞설까?

기자 사용설명서 ⑥

by 꽁냥이
알권리.png '알 권리'라는 방패


알 권리 대행인

'알 권리'란 국민이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가진 정보를 알고, 접근하고,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국가 정책이 왜 이렇게 결정됐는지,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공공기관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은 말 그대로 알 권리가 있다. 국민이 갖는 당연한 권리인데, 하지만 당연하게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예외적 비공개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하고 핵심을 찌르는 건 이런 예외사항이다. 기자는 쉽게 행사하기 힘든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 행사해 주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와 관련해서는 이 권리가 제대로 대신 행사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만약 기자라는 매개채가 없었다면 이 전 후보자의 갑질 녹취파일과 편법청약 의혹은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테다. 개인 간의 전화 녹취나 가족 부동산 문제는 어찌 보면 굉장히 사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기사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장관이라는 자리가 갖는 무거운 공익성 때문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함이었다는 말로 취재과정 중 발생하는 위법성이 일부 조각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CCTV 보도다. 자신이 아닌 제3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확보해 보도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침해이지만, 화면을 블러해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공익성이 인정돼 보도가 가능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알 권리의 딜레마

하지만 이 알 권리를 어디까지 행사해도 될 것인가에 대해 종종 혼란이 생긴다. 갓 기자에 입문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이 딜레마를 느끼는 곳이 바로 빈소 취재다. 빈소 취재를 하는 목적은 망자가 생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가족들의 절절한 사연을 알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사람을 추모하는 곳에서 언론사 기자는 분명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PYH2022092011020001300_P4.jpg 2022년 9월의 신당역

지난 2022년 발생한 서울 신당역 살인사건. 피해자는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고, 다음날 나도 바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향했다. 의료원 현관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유족, 서울교통공사 직원, 그리고 기자들이었다. 새삼 침울한 공간 속,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나와 같은 기자들이었다. 뭐라도 들고 가야 하는데, 도저히 말 걸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누군가 말을 한다 싶으면 우르르 달려가서 휴대전화 녹음기를 들이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녹음은 그날 신문 또는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분명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는 이 현장을 전해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길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 도가 지나칠 때도 존재한다. 유족이 반대 의사를 표했음에도, 기자들은 자리에서 쉽게 벗어나질 않는다. 비록 블러를 친다 하더라도 유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 과연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싶기도 하다. 수많은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신상공개제도'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살인, 음주운전 등 강력범죄 사건 기사에는 꼭 이런 댓글이 달린다. "저런 나쁜 놈의 얼굴을 가려줄 필요가 없다. 모자이크 치지 말고 신상공개해!" 하지만 함부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언론사가 자의적으로 신상공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죄의 중대성, 충분한 증거, 공익성이라는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중대범죄사건의 피의자만이 특정 절차를 거쳐 신상이 공개된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다'는 이유로 이 절차를 무시하기도 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n번방 사건의 박사 조주빈이 대표적 사례다. 아무리 이들이 흉악범이라고 하여 언론이 신상공개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알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

데일리 뉴스를 하는 언론사들은 대부분 철야근무가 존재한다. 남들이 퇴근할 때쯤 출근해 다음날 아침까지 근무하며 밤에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을 챙긴다. 철야근무자의 취재 상대는 보통 소방서나 경찰서, 구청 등 당직 근무자이다. 무슨 일이 터지게 되면 "밤늦게 실례합니다. 어디 기자인데요"라는 말로 전화를 시도한다. 소소한 사고를 묻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명피해가 있는 큰 사고들은 말이 다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이들도 대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자들의 전화를 받기가 쉽지 않다. "지금 출동 중이어서 나중에 전화 주세요"라는 대답이 나와도 기자들의 전화는 쏟아진다. 기자들 전화 때문에 현장대응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사건을 신속, 정확히 보도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지만 그 역할에 너무 빠진 나머지 더 중요한 걸 놓쳐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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