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사용설명서 ⑤
[빨대] (명사) '물 따위를 빨아올리는 데 쓰는 가는 대'
뜬금없이 갑자기 웬 빨대 얘기냐고 하겠지만, 빨대는 기자들 사이에서 꽤 자주 쓰이는 은어다. 간단히 말하면 정보를 주는 핵심 취재원이다. 하지만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단어다. 기자라는 직업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바로 핵심 취재원을 만드는 방법이다. 사실 배운다기보다는 알아서 터득한다고 보는 게 편하다. 취재원을 만드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이다.
수습기자 시절, 매일매일 미션이 주어졌다. "2시간 줄 테니 경찰 3명 만나고 와서 보고해." 등골이 오싹한 선배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타임어택이 시작된다. 나름 동선을 잘 짜서 경찰서 본서와 지파(지구대, 파출소) 3군데를 돌고 사람과의 소통을 시도해 본다. 하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말이 그리 따뜻할 리 없다.
"바빠요. 다음에 오세요."
"처음 보는 사람이랑 왜 차를 마셔요?"
"기자 응대 안 해요. 홍보 쪽에 연락하세요."
내가 수습을 했던 시절은 코로나19가 창궐했었던 당시여서 그런지 사람 만나는 게 더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경찰서를 비롯해 거의 모든 지구대 파출소가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못 만나면 혼났기 때문에, 어떻게든 만나야만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랑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이 본인의 취재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인연을 관리해 나가는 건 또 기자마다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인연이 아니다. 인연을 넘어 우리는 뭔가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겉으로 스몰토킹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 이거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나?'라는 되네이고 있다. 카톡을 주고받을 때는 마치 썸남썸녀에게 말을 걸듯 궁금한 사항을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하기도 한다. 용기를 내어 조직의 내밀한, 밝히기 어려운 비밀을 물어봤을 때 비로소 취재원과의 관계가 설정됐다. '아 이 사람은 얘기가 통하는구나, 이 사람은 얘기가 안되는구나' 말이다. 그런 점에서 기자와 취재원 사이는 너무 어렵다. 아직도 어렵다.
인생 선배
한 출입처에서 체류하는 시간은 보통 2년. 2년 동안 한 곳에 있다 보면 자의 반 타의 반 아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일을 하다 보면 일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집안 얘기도 하고, 주식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다 보면 친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자는 순환보직이다.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한 곳에서 최소 10년 넘게 하시는 분도 봤지만, 일반적으로는 출입처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타 부서로 발령이 나는 순간, 회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로 다음 날부터 다른 곳을 취재해야 하는 것이다. 매번 '인사 나도 연락드리겠습니다 ^^'라는 문자를 매번 보내지만, 지키기 쉽지 않은 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 기자 요즘 연락 뜸하네?"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연락드리는 게 일쑤다.
최근에 모 법조인 A 씨를 만나러 대구에 다녀왔다. 지난 2015년 초만 해도 A 씨와 전화 통화를 안 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00 일보에서 난 단독 기사, 내용 확인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맞을까요?"
"아유.. 우리도 몰라. 도대체 어디서 확인한 건지 모르겠어."
A 씨는 비단 내 전화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았을 테다. 전화를 하면서도 항상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시간이 흘러 과거의 일은 추억이 됐고, A 씨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나는 A 씨를 취재원을 넘어서 인생 선배로 모시기로 했다. 공격수와 수비수. 기자와 출입처의 관계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뭐라도 하나 알아내려 요리저리 질문을 던져야 하고 출입처 관계자는 문제가 되지 않도록 잘 답해야 한다. 사실 A 씨가 정보를 준 적은 없다. 그냥 전화만 잘 받아줘도 너무 감사한 것이다. A 씨를 또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
타사 기자 중에 유달리 단독을 많이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오죽하면 그 기자가 현장에 뜨면 우리들끼리 "여기 뭐 또 터졌나 보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 정도면 좀 으스댈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기자는 그런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말이다) 주변 취재원들로부터도 항상 좋은 말만 들렸다. 그런 그를 보며 결국 좋은 취재원과 정보는 좋은 행동거지에서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기자 중에 오만한 태도를 가진 사람도 많이 봤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끝은 좋지 못할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취재처와 취재원일지라도 항상 그 순간만큼은 진정성 있고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