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특검의 끝

특검에서 살아남기 ⑨

by 꽁냥이
수사종료.jpg 사진 = YTN

잡설

지난해 10.15일 부로 경제부로 인사발령이 났다. 새로운 부서 적응 및 개인 사정으로 3대 특검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는 핑계를 들고 싶다. 서초동을 떠나면서 들었던 아쉬움과 경제부 근무 이야기는 또 따로 남겨보기로 하고, 옆부서에서 본 3대 특검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려 한다.


순직 해병 특검 (2025년 7월 2일 ~ 2025년 11월 28일)

가장 먼저 수사를 마무리한 건 순직 해병 특검이었다. 지난해 11월 28일을 끝으로 약 15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총 기소 인원은 33명, 그중 구속된 사람은 임성근 전 해병대 1 사단장이 유일했다. 이로 인해 타 특검과 비교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당시 해병 특검을 담당했었기에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바이다. 한 차례 수사가 이미 이뤄졌던 사건이기도 하고, 결국 진술과 기억에 의존한 수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해병 특검의 수사 순서는 '내란 특검'과 정반대였다. 내란 특검이 시작과 동시에 사건의 총책임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 정조준했던 것과 달리 해병 특검은 사건의 실무진들부터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명현 특별검사가 생각한 나름의 전략이 있었겠지만, 다른 두 특검이 윤 전 대통령을 향해 칼날을 빠르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진 궁금하다.


부서를 이동하고 나서 들려왔던 흥미로운 소식은 공수처를 겨냥한 수사였다. 지난해 10월 말쯤 송창진 전 공수처 부장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는 것까지만 팔로우가 됐었는데, 결국 오동운 공수처장까지 재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채해병 사건을 총괄했던 수사기관이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되는 모습을 보며 냉혹한 현실의 모습을 보았다.


내란 특검 (2025년 6월 18일 ~ 2025년 12월 14일)

그다음으로 조은철 특검이 지휘했던 내란 특검이 수사를 마쳤다. 지난해 6월 18일에 수사를 시작해 약 180일 간 수사를 진행해 12월 15일 공식 수사 마무리 브리핑을 진행했다. 출범 22일 만에 윤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파격행보를 보인 특검이었다.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27명을 재판에 넘겼고 그중 5명이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어찌 보면 3대 특검이 가동될 수 있었던 12.3 비상계엄의 본류를 파헤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출발부터 국민의 많은 관심이 모였던 것 같다.


윤 전 대통령과 비상계엄 수뇌부 등에 대한 수사가 얼추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내란 특검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무인기 도발 의혹'이었을 것이다. 적국인 북한에 연락해 진술을 들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내밀한 정보들이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기사들은 당시 국회 몇몇 의원실에서 증언들을 취합해 속칭 '~전해졌습니다. ~알려졌습니다.' 형태로 보도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쏟아지는 단독 기사를 보고도 확인도 되지 않으니, 이게 정말 맞는 내용인지 의심이 되는 기사가 많았었다. 특검 수사 초반부터 윤 전 대통령을 소환하고 바로 구속시켰기에, 기자들을 초반부터 고생(?)시킨 특검이었다. 하지만 기자들과 마무리는 훈훈하게 끝났다고 전해 들었다.


김건희 특검 (2025년 7월 2일 ~ 2025년 12월 28일)

마지막으로 가장 방대한 의혹을 다뤘던 김건희 특검이다. 민중기 특검이 지휘한 김건희 특검도 내란 특검과 비슷하게 약 180일 기간 동안 수사를 진행했고, 지난해 12월 28일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김건희 씨를 비롯한 총 76명이 재판에 넘겨졌고, 그중 20명이 구속됐다. 3대 특검 중 가장 많은 구속인원 수다.


김건희 특검의 출발은 좋았다. 수사 개시 약 58일 만에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를 성공적으로 구속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등에서 직접 발언 등을 하며 많은 모습을 보였던 윤 전 대통령과 달리 당시 김 여사의 발언 하나하나가 큰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수사 분야가 너무 방대한 탓이었을까. 크고 작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윤 전 대통령이 속옷을 입고 있었다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사건, 민 특검이 통일교 전관 변호사를 만났던 사건 등이 도마에 오르며 논란이 일었다. 또 막판엔 현재 여당과 통일교가 엮여있다는 의혹 들이 줄줄이 제기되며 김건희 특검의 수사는 아슬아슬하게 끝맺었다.


기자들에게 김건희 특검이 또 기억에 남는 건 특검 사무실이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 당시 35도를 넘나드는 최악의 여름이었지만, KT광화문 WEST 빌딩은 기자들을 안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김건희 특검을 취재했던 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으리으리한 외관과 달리 취재환경은 '지옥' 그 자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지금 공식 개관해 각종 편의시설과 냉난방시설이 갖춰진 빌딩을 돌아다녀보면, 그때도 열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다른 두 특검과 달리 서초동에 있지 않아 몇몇 언론사들은 따로 광화문 근처에 오피스를 단기 계약해 취재하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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