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성공이다.

by 이지연

절반은 성공이다.


나는 아들 쌍둥이 엄마이다. 아이들은 쌍둥이지만 외모, 성격, 식성, 수면 패턴도 너무나 달랐다. 너무나도 다른 아이들이기에 모험 아닌 모험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아이 둘을 각자 다른 반에 넣어 생활하도록 했다. 8살을 앞두고 이사를 했다. 친구들이 거의 없는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이것 또한 아이들이 이기고 나아갈 일이었기에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나쁜 엄마이다) 첫째는 동생 없이 친구를 사귀고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그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늘 부엌 싱크대 밑에 앉아 중학교 1학년이 될 때는 꼭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반면 둘째는 첫째와의 비교 없이 오롯이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 현실을 너무나 즐겼다. 친구를 사귀고 적응하는데 별 무리 없이 잘 지내는 듯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이었지만 서로가 격려하며 이 시기를 잘 견뎌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엊그제 같은데 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중학교에서도 다른 반에서 생활하고 있다. 6년 전 싱크대 앞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부탁했던 일이 떠올라 첫째에게 같은 반으로 해달라 부탁할까, 물었더니 손사래를 친다. 이제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는 제스처이다. 아이의 시크한 반응이 어렸을 적 모습과 오버 랩 되어 웃음이 났다. 어느새 훌쩍 자란 건지 코끝이 찡해진다.


일 대 일로 마주 앉은 건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아이와 내가 작성한 서류를 보셨다. 괜찮은 듯 담담하게 우리의 상황을 말씀드려야지 했는데 나는 벌써 수도꼭지가 열렸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수도꼭지는 언제쯤 고쳐질지가 의문이다) 선생님은 이미 아이를 통해 우리의 상황을 알고 계셨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했다. 아이는 아주 담백하게 우리의 상황을 선생님께 이야기했다고 했다. 아이가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새 학기마다 겪어내야 할 우리의 상황에 원망이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오려 했다. 나는 그 마음을 밀어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은 어려웠을 시기를 잘 보낸 거 같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혹시 아빠의 부재로 인해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둡지 않을까 늘 걱정이 됐다. 부족한 나이기에 내가 채울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아이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밝았으며 학교생활도 열심히 잘해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들에게 신임을 얻고 있다고 했다.


‘절반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아이에게 무섭게 다그칠 때도 있었고, 나름대로 사랑을 준다고 했지만, 엄마로서 늘 부족한 게 많았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며,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며 아이의 마음보다는 나를 다독이곤 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분명 내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나를 잘 돌보고 있었다.

나보다 더 큰 그릇으로, 나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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