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현실 사이
싸늘한 분위기가 감싼다. 아들과 마주 앉았다. 먼저 정적을 깬 건 아들이었다. “나는 3시간을 원해,” 나는 엄마로서 더 넓은 아량을 뽐내며 “ 넉넉하게 4시간으로 해.”라고 말했다. 순간 ‘나 좀 멋짐’이란 마음이 살짝 고개를 들었지만,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정도면 서로에게 최선이겠지, 네가 잘 지켜주면 좋겠다. 그래, 이번에 너를 한번 믿어볼게."
땅땅땅, 주말 4시간. 아들과 나는 협상 테이블에서 드디어 일어날 수 있었다.
“믿어볼게,”
아니 솔직히 말하면 ‘믿지 못하겠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건 누구의 잘못일까?
나는 요즘 새로운 일에 도전 중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생에게 미디어가 무엇이고, 미디어를 슬기롭고 안전하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미디어의 활용이라는 내용을 가르치며 아이들이 미디어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아봤다. 수업 전 선생님은 아이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서 걱정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정작 수업에서는 아이들은 걱정과는 다르게 미디어를 잘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 이럴 땐 솔직한 고백이 최고지!” 나는 금세 8살이 된다.
“사실 어제 엄마에게 혼났어, 엄마 몰래 유튜브를 봤거든, 하나만 보고 꺼야지 했는데 계속 보고 있더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볼수록 더 보고 싶었어,”
아이들의 이야기보따리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엄마, 아빠 몰래 새벽에 일어나서 게임 해요”, “어른들이 보는 유튜브를 봐요.” “주말에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해요.” “엄마가 일하러 가셔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재잘재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다. 역시나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아이들 마음 문을 여는 비밀 열쇠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
아주 민주적인 대화가 오고 간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더 나아가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이용하면 좋을지 토론 과정을 거친다. 가끔 대화의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다시 흐름을 잡고 결론의 과정에 이르게 된다. 결론은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미디어를 보는 것도 행복하다. 미디어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맞는 걸까, 아이들에게 맡겨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아이들이 슬기롭게 미디어를 사용하도록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딱 떨어지지 않아 생각이 많아진다.
아들은 영락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저마다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아들의 대답은 엄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장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싶지만, “참을 인(忍)” 자를 새겨 본다.
아들은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미디어를 이용할지 아이디어를 낸다.
나는 한 번 더 아들에게 속아 줄 마음이다.
아들이 제시한 방법이 지금까지와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또 한 번 아들을 믿기로 했다.
이론과 현실의 벽은 참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