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의 시간, 러시아까지의 여정, 러시아 입국 심사
준비의 시간
딸아이를 보겠다고 덜컥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지난번 제주는 혼자 한 첫 국내 여행이었다면, 이번 러시아는 혼자 하는 첫 해외여행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딸아이는 러시아의 여름이 더울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나 역시도 우리의 여름보다 추울 것 같아서 얇은 긴 팔을 챙기라 했었다. 둘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는 여름에 막 입고 버리고 올 반 팔을 챙겨 오길 부탁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군것질거리와 그곳에서 부탁받은 물건들 고마운 분들께 준비한 선물로 캐리어 하나가 가득 찼다.
로밍도 미리 신청해 두고 내 짐도 싸고 비상식량 준비까지 마쳤다. 막상 떠나려니 딸을 만난다는 기쁨보다는 경유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중국에 내려서 환승 구간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하며 시작도 전에 걱정만 한가득이다. 새벽 3시 55분 리무진을 타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알람도 잘 맞춰 두었건만 눈을 뜨니 3시 27분. 헉, 늦었다. 신랑을 깨우며 빛의 속도로 이를 닦고 눈곱만 떼고 가방을 챙긴다, 내가 준비한 시간이 너무 빨랐나?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자동차 키를 챙겨 들었다.
러시아까지의 여정
리무진 출발 1분 전에 공항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행히 리무진을 쫓으며 드라마를 찍진 않았다. 짐을 싣고 나도 버스에 올랐다. 신랑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자리에 앉아 카톡으로 인사했다. 중국의 항공기를 이용해 중국 상해에 내린 후 2시간 30분의 경유 시간을 거쳐 같은 항공사 비행기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가는 여정이다. 짐은 모스크바까지 연결이 되니 찾는 번거로움은 없고, 나만 중국에서 게이트 잘 찾아 시간 맞춰 비행기만 타면 되었다. 중국에 내려 어깨에 붙이면 도움을 줄 거라는 부적 같은 스티커를 들고 우리나라 출국장을 무사히 빠져나갔다.
중국에 환승 구간을 통해 입국하고 바로 이어 출국 심사장으로 연결이 되었다, 우리나라를 빠져나오며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기내용 짐 검사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무사통과 되리라 생각했다. 자신 있게 컨베이어벨트 위 바구니에 가방을 담아서 보냈다. 나도 그사이 수색 구간을 통과했다. 아뿔싸! 내 짐이 걸렸다. “배터리?” 알아듣고 꺼냈다. 용량이 얼마인지 유심히 살피더니 통과. “랩톱?” 다음 또 뭐가 있다.
가방을 뒤지더니 지갑을 꺼낸다. 내 지갑의 장식이 금속 면도칼 모양이다. 갑자기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바구니째 모두 가지고 가버린다. 지갑과 휴대전화를 순식간에 빼앗기는 상황이 되니 나도 모르게 검색대를 역주행하며 쫓아갔다. 불처럼 화를 내는 공항 직원. 한쪽에 서서 얼음이 되었다. 짧았지만 나에게는 긴 시간이 흐르고 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기운이 쭉 빠져서 게이트를 어찌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모스크바 가는 비행기의 게이트가 열리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9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창가 자리를 배정받은 건 내 불찰이었다. 두 번의 기내식이 나왔다. 옆에 분이 선택하고 나에게서 기내식의 선택권이 사라졌다. 두 메뉴 중 한 가지 메뉴가 품절이어서 선택할 수가 없었다. 다음번에 나에게 우선 선택권을 주겠다며 트레이를 건넸다.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정말 나에게 먼저 왔다. 난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그런지 다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중요 단어도 ‘beef’와 ‘pork’만 들렸다. 밥을 먹고 싶었으나 내가 고른 소고기 메뉴는 우엉채와 함께 짭짤하게 볶은 면 요리였다. 의도치 않게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50%의 확률게임에도 졌기 때문이다. 밀가루만 먹다 보면 갑자기 혈당이 상승했다 떨어지며 식은땀을 흘리게 된다. 가방 안에 비상식량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허기를 채웠다. 앞 좌석의 아이와 놀이하며 9시간이 넘는 긴 비행시간을 보내고 나니 착륙 방송을 한다. 갑자기 시간이 6시간 뒤로 가며 우리나라 시간 밤 11시가 현지 시각 오후 5시가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러시아 입국 심사
입국심사대가 여러 개였다. 외교관이라고 써진 곳은 짐작 상 아닌 걸 알고 가장 짧은 줄에 섰다. 초록 화살표에 불이 들어오자 앞으로 걸어갔다. 마스크, 모자, 선글라스는 안된다는 표시를 보고 마스크를 내렸다. 그러나 나에게 뭐라고 한다. 난 모자도 쓰지 않았고 선글라스도 착용하지 않았기에 그대로 서서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내가 꿈쩍도 안 하고 있으니 문을 열고 나와 나를 끌어내며 위를 가리킨다. 러시아 국기가 그려져 있다. 내국인용 줄이었다. 주변국인 OO스탄 국가들을 위한 라인도 따로고 난 긴 대열 마지막에 서고 외국인 전용 줄에서 심사를 받았다. 열 손가락 지문등록을 하고 허가증 같은 걸 받아 들고는 입국장을 나왔다.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가 타고 온 비행기의 짐 찾는 곳도 바뀌어 있고, 이미 다 나오고 다른 편명 비행기의 짐이 돌고 있었다. 비행기 표를 들고 직원을 찾아 물어가며 수화물 찾는 곳을 뛰어다녔다. 짐을 잃어버렸을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저 한편에 덩그러니 버려진 짐을 찾아들고 마중 나온 딸과 상봉했다. 반가움에 진한 포옹 하며 딸아이를 만날 생각을 하고 왔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펼쳐지며 우리의 러시아에서의 만남은 무미건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