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by 이지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상했다. 오늘은 왜 컨디션이 좋지 않냐고 물었더니 한숨을 쉰다. 의자에서 떨어져 넘어졌다고 했다. 다친 곳이 없냐고 물었더니 팔이 잘 안 올라간다고 했다.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 당장 병원에 가시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간다고 했다. 순간 짜증이 났다. 일이 먼저냐고 사람이 먼저라고, 하지만 아빠는 일을 마무리하는게 좋을 것 같다며 한사코 내 말을 듣지 않으셨다. 우선 전화를 끊었다. 동생과 엄마에게 아빠에 관한 상황을 알리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우선은 집까지 무사하게 돌아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고민하는 사이, 아빠가 다시 전화했다. 일은 마무리했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오른손을 다치셔서 운전을 어떡할지 고민했는데, 아빠는 한 손으로 그것도 왼손으로 핸들을 돌려 무려 1시간 이상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돌아오셨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나는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우선은 아무 일도 없이 돌아오시게만 해달라고 말이다.

병원에서 x-ray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별일 없을 거야,’ 하고 안심하는 찰나, 아빠가 전화하셨다. 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하라고 말이다. 의사 선생님은 아버지가 팔꿈치 골절이 심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빨리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고 했다. 아빠는 나랑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전화를 끊고 선택지에 없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동생과 함께 빨리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보다 아빠가 더 빨랐다. 아빠는 바로 내일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하셨고 입원 절차를 밟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 시각, 나는 일을 해야만 했다. 마음이 분주하고 모든 신경이 아빠에게 쏠려있었지만 나는 내 일을 해야만 했다. 집 근처 마트에서 들러 병원에서 드실 수 있는 과일과, 반찬거리를 샀다. 준비한 재료를 손질해서 요리해야 했지만, 그건 수업 뒤로 밀어뒀다. 병원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다 보니 어느새 가방이 두 개나 꽉 찼다. 나는 병원에 이골이 난 터라, 짐 싸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내가 수업하는 사이, 아빠와 엄마는 입원 절차를 끝냈다. 고령에다(나는 아빠가 젊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병원에서는 그리 생각지 않았다) 드시는 약이 많아서 수술은 당장 못한다고 했다. 여러 가지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고, 월요일쯤에나 수술이 잡혔다고 했다. 하루 종일 놀라셨던 엄마와 아빠는 긴장이 풀리셨는지 일찍 잠에 드셨다.

늦은 시간까지 수업하고 나는 주방 싱크대 앞에 섰다. 아빠와 엄마는 병원 밥을 잘 못 드신다. 저녁도 두 분이 먹는 둥, 마는 둥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낮에 사다 둔 과일을 바로 드실 수 있게 한입 크기로 도시락에 담았다. 그리고 채소 스틱을 만들었다. 3색 파프리카랑 오이랑 오이고추를 깨끗하게 씻고, 핑거푸드처럼 잘랐다. 맛있게 찍어 드실 수 있게 쌈장도 만들었다. 메추리알, 꽈리고추, 버섯 장조림을 매콤하게 만들고, 혜정 언니에게 배운 마늘종 새우를 볶았다.(혜정 언니 솜씨를 따라갈 수 없지만 그래도 내 입에 맛이 괜찮았다) 볶은 김치와 소불고기를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가져다줄 음식이 준비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 학교 보낼 준비를 하는데, 큰아들이 묻는다.

“병원 가는 거 아니야? 어디 놀러 가?”

가방이 5개나 되니 아들은 내가 병원이 아니고 다른 곳에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지하 주차장에 짐을 2번이나 옮겨 담고 아빠가 계신 병원으로 출발했다. 어제의 수고로움에 대한 보답으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샀다. 달달하고 시원한 커피가 피곤함을 사라지게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 선생님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의 팔은 5조각으로 골절이 나 있었다. 부서진 뼈가 부족해 골반에서 뼈를 잘라 골이식해야 한다는 다소 겁나는 이야기도 들었다. 간단한 수술이라 했지만, 연세가 있으신 아버지가 감당하실 수 있을지 걱정됐다. 전신마취에 수술 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수술하는 건 아빠인데 내 뼈가 잘리는 듯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대신 해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아빠가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심성 있는 분이 하필 어제는 왜 그러셨을까,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환자복을 입고 계신 아빠의 모습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가 너무 약해 보였다. 늘 강인하던 아빠가 한없이 약해 보였다. 아픈 건 아빤데, 아빠는 먼 길 오느라 고생한 딸을 더 걱정하셨다. 순간 눈물이 났다. 지금 필요한 건 눈물이 아니니까 마음을 다잡았다.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어마어마한 짐을 보고 엄마와 아빠는 놀랐다. 나는 하나씩 꺼내며 왜 이것이 필요한지 설명했다.


가져간 반찬으로 아버지는 식사하셨다. 아무래도 병원에 계시다 보니 운동량이 적어 평소보다 밥을 적게 드셨다. 아빠 입맛에 맞으면 좋으련만, 내 반찬은 엄마의 음식솜씨 앞에 지고 말았다. (엄마는 요리 솜씨가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감히 누가 누굴 이겨,) 그래도 아빠는 딸이 해온 성의가 고마워 밥을 드셨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자식으로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행복했다.


식사 후 아빠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하셨다 모든 검사 과정에 오른쪽은 엄마가, 왼쪽은 내가 있었다. 아빠는 든든한 아군을 둘이나 데리고 병원 검사실을 다녔다. 외롭지 않게 말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곁에 있으니 어려운 검사도 씩씩하게 잘 받으셨다. 나는 병원에서 보호자로서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다시 본업을 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까지 아빠는 딸 찬스를 쓰셨다. 하나는 엄마가 급히 오시느라 약을 챙겨오지 않으셨다고 했다. 엄마랑 같이 진료를 보고 이 전 병원에서 팩스로 처방전을 받아 약을 지어달라고 하셨다. 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고 병원 외부 약국을 가느라 번거롭긴 했지만, 아빠의 부탁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해결해 드렸다. 마지막은 아빠의 휴대전화를 점검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빠는 분명 누른 적이 없다고 했는데 키보드에는 알 수 없는 언어 자판이 깔려있었다. 앱은 여러 개가 뒤죽박죽 상태였다. 지난번 만나서도 해결해 드린 문제가 또 생긴 것이다. ‘그래 화내지 말아야지, 이게 효도다’라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고 문제를 해결해 드렸다. 이제 딸로서 오늘의 임무는 끝!!


집으로 돌아오는 길,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힌다.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지만, 그래도 아직 건강하게 우리의 곁에 계심에 감사했다. 팔이 부러져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나는 머리 와 고관절 다치지 않으신 게 어디냐며 감사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더 좋았겠지만, 불행 중에서도 다행을 찾았다. 고난 속에서 기쁨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난 후에 올 기쁨을 기대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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