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떠날 수 있을까

by 이지연

빈센트 반 고흐_밤의 카페 테라스


우리는 떠날 수 있을까

모든 계획은 그가 맡았다. 나는 그가 만들어놓은 계획에 맞춰 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 가끔 흥을 꺼내 그에게 ‘나는 행복하다’를 보여주면 됐다.

바쁜 일상을 사는 그에겐 휴일 또한 전투적이었다. 휴일도 꼼꼼한 계획하에 움직였다. 독박 육아로 힘든 나를 그는 전투적으로 데리고 다녔다. 인기 있다던 브런치 카페를 데려가는 날도 있었고,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시원한 바다를 보이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데려가기도 했다. 항상 내 옆엔 늘 든든한 그가 있었다. 그는 남편이기보다 친구 같았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든든한 친구 말이다.


그가 떠나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어디를 가도 늘 함께였던 남편이 사라졌다. 나는 놀이공원에서 길 잃어버린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다. 어디로 가야 엄마를 만날지 방황하고 있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나를 지나치던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얼굴에 드리운 미소마저 부럽다. 나도 그들처럼 아무 걱정 없이 웃어보고 싶다. 그 옆에서 행복하게 웃던 과거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나는 돌아갈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가보려고 계획을 세웠다. 늘 남편이 하던 일이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걱정스럽다. 혼자 하는 운전도 걱정이고 여행 중에 투덕거릴 아이들도 걱정이다. 내가 그렇듯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여행을 꼭 가야 하는지 물어보며 내 표정을 살핀다. 아마도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을까 염려하는 듯하다. 우리 서로가 여행은 아직이구나 싶어 여행계획을 적어둔 수첩을 덮었다.

아직 때가 이르다.


10년 넘게 누군가의 배우자로 살았다. 남편이 열심히 벌어온 돈으로 그간 편안하게 살아왔다. 이제 나는 가장이 되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가장이 되었다. 가끔은 옆도 보면서 쉬고도 쉽지만, 아직 현실이 녹록지 않다. 지금은 옆을 보기보다 앞을 봐야 한다. 그래서 계속 직진 중이다. 아직은 잘 견뎌내고 있다. 잘 이겨내고 있다. 이제 좀 나의 열정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욱 힘을 내고 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내 생활이 숨 막힌다고 좀 쉬라고 말하지만 나는 잘 견뎌내고 있다. 가끔은 피곤해서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잠을 못 자 피곤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잘 버텨내고 있다.

아직 생존 중이다.


아들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한 아들은 우리 셋이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냐고 한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 셋도 한번 도전해 보자고 한다. 나도 걱정이 되는 부분은 있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다가올 여름 방학에 떠나 보기로 했다. 한 아이는 아직도 부담스러운지 방학에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이번에는 가볍게 아들 말을 패스해 본다. 매일 밤, 잠자는 시간을 줄여 아들이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하고 정보를 찾는다. 이번에는 가능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한편으론 살짝 설레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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