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_피아노 치는 자매들
엄마의 소원이었다. 딸이 피아노를 배워 교회에서 반주하는 것을 말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원에 갔다. 달걀 하나 쥐듯 손을 예쁘게 오므리고 건반을 두드렸다. 간혹 치기 싫어 손목을 뒤로 제치면 영락없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체르니 40번까지 어찌 어찌하여 끝내고 교회에서 반주하게 되었다.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는 악보를 보고 그대로 치는 것에는 소질이 없었다. 코드를 보고 내 맘대로 반주법을 만들어 치곤 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내가 치면서도 내가 감동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엉망진창인 날도 있었다. 코드를 제대로 배웠으면 더 잘 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곡을 여러 명이 치지만 저마다의 느낌이 다르다. 같은 곡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치느냐, 어떤 마음으로 곡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부끄럽지만 나의 반주에는 정확함보다는 애달픈 감정이 들어간다. 애달픔, 마음을 두드리는 곡이다. 곡마다 색깔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기에 반주가 늘 다르다, 그날 나의 마음도 영향을 미친다. 남편을 보내고 나는 슬픈 곡만 쳤다. 내 마음이 그랬기에 슬픈 곡이 나의 마음을 다독여줬다. 내가 치고 내가 울고 내가 위로를 받았다. 음악이 주는 힘이었나 보다.
사실 나는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다. 현악기 특유의 소리가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현악기의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의 울림은 나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엄마는 교회 반주는 곧 피아노라는 생각뿐이어서 내가 바이올린하고 싶다는 마음은 읽어주지 않으셨다. 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숨겼다. 아니 감췄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바이올린을 사서 엄마 몰래 배우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마주하던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 소중해서 아직도 마음 한편이 아리다. 비록 오랜 시간 배우지 못했지만, 바이올린으로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오늘도 교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제는 노안까지 와서 정확함은 더 떨어진다. 하지만 음악이 주는 느낌을 알기에 곡이 주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다. 나의 반주를 듣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음악이 주는 힘을 나누어주려고 한다. 내가 그리 치유 받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