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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Jun 12. 2022

인간에 대한 철학은 얼마나 깊어졌을까

<성취예측모형> 서문을 읽다가

당분간은 HR관련 책을 안 사려고 했다. 이미 사놓고 안 본 책도 많고(책 나무는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는 중...) 무엇보다 책 원고를 쓰느라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 그런데 지난 연휴 때 서점에 심심풀이로 구경을 갔다가 결국 HR 책을 한 권 사고 말았다. 최동석 소장님의 <성취예측모형>이란 책이다.


서문에는 저자가 갔던 독일 연수 시절의 이야기가 나온다. 1980년대 독일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 부분의 모든 조직이 명령과 통제 없이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피라미드형 계급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람에게 권한과 권력을 몰아준다(지금도 별로 변한 것 같지는 않다)


독일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저자는 독일어권 국가들과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 사법, 언론, 종교, 정치, 산업의 다양한 기능들이 모두 같은 철학적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철학적 토대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단어를 보자 풀리지 않던 고민이 해결된 느낌이었다. 


막연히 가지고 있던 고민은 '왜 대기업, 스타트업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막 대하는 현상이 발생하는가'였다. 직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을 하거나, 기계 부품 쓰듯이 사람을 갈아 넣는 비인간적인 문화. '스타트업은 다르겠지'라고 예전에는 막연히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기업의 규모, 산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비인간적인 대우는 어느 조직에서나 생길 수 있다. 


제도와 시스템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 아닐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와 욕망,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탐구하는 바탕 위에서 각종 제도와 시스템이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인간의 존엄' 같은 기본적 토대도 갖춰지지 않은 채 애자일, OKR, 수평문화를 말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번 주에 글로벌 컨설팅펌에서 진행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HR 트렌드, 평가 제도, 조직 설계 등등 다양한 HR제도들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발표 중간에 컨설턴트가 말했다. "오래 HR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 나오는 어젠다들은 10년, 20년 전에도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HR제도가 그 사이에 많이 진화했습니다." 나는 그 말이, 거칠게 표현하면  10년, 20년 전에 있었던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껍데기만  바꿔 왔다는 말로 들렸다. 


제도는 많이 변해왔지만 인간에 대한 관점과 철학은 얼마나 변화했을까? 아니,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왔을까. 당분간은 HR책도 좋지만 가벼운 철학 책도 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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