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돌보며 앞으로 나아가자
성수에서 머리를 자르고 오랜만에 방문한 메시 커피. 마침 손님이 없어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깨달았다. 최근 몇 달간 이렇게 멍하니 하늘 한 번 바라보는 여유가 없었다는 걸. 그리고 내가 ‘좋다’고 느끼는 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걸.
몇 달간 일상에서 ‘나’가 중심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정한 업무 일정, 팀장님과 선배의 시선,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마음 등 모두 내가 아닌 바깥의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외부 요인이 일상의 감정과 행동을 좌지우지했다. 그 와중에 내가 중심이 되는 질문들은 사라졌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지, 나는 일할 때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같은 질문들은 머릿속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내가 아닌 남이 일상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렇게 남이 일상의 중심을 차지하자 단단했던 자아는 조금씩 금이 갔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점점 취약해졌고 급기야 번아웃 증상이 왔다. 목요일 아침에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간단한 보고서 작성, 엑셀 데이터 정리처럼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하던 작업을 조금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이 파업을 선언했다. 나 힘들다고, 못 해 먹겠으니 좀 쉬라고 내 몸의 강제종료 버튼을 누른 것이다.
아내의 조언으로 마음상담을 받게 되었고 상담사의 도움으로 감정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상담받으며 몇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나에 대한 채움(In) 없이 계속 꺼내 쓰기만(OUT) 했구나
내가 아닌 남이 내 일상의 중심이 되었구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일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리스크가 될 수도 있구나.
의도적으로라도 나의 감정과 기분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들을 해야 한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고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이다. 정신적인 에너지와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그걸 잊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만 했다. 나 자신을 삶의 중심에 놓고 스스로를 돌보고 달래 가며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돌봄을 잊어버리고는 잠깐은 몰라도 오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